[Why] [남정욱 교수의 명랑笑說<1981~1985>] 어릴 때 미치도록 신고 싶던 그 신발…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지금, 행복하나요?

미치도록 신고 싶었다. 옆구리에 착 달라붙은, 승리의 여신인 니케의 날개를 형상화했다는 날렵한 마크. 뭉툭하지도 뾰족하지도 않아 중용의 덕을 실현한 신코. 그리고 최신 스포츠 과학이 떠받치고 있는 우레탄 소재의 와플 밑창. 그것은 맨발의 마라톤 영웅 비킬라 아베베의 발을 감싸도 소홀하지 않을 유일한 신발이었다. 그리스 신화의 신들에게도 신이 있었다면 이 신 말고 다른 신은 아니었을 것이 틀림없는 신화적인 신발이었다. 사람을 보면 발부터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는 딱 두 종류의 사람이 있었다. 나이키를 신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선조들의 통찰에 절로 무릎을 쳤으니 아아 신언서판.

어머니, 신발을 사고 싶어요. 지금은 맨발로 다니냐. 그게 아니라 좋은 신을 신고 싶어요. 내가 너라면 그 성적표 가지고 차마 부모에게 그런 소리 못한다. 다음 시험에서 20등 올릴게요. 흥, 그래 봐야 40등이네. 흑흑, 어머니는 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틀림없어요. 사랑 같은 소리하고 있네. 먼저 사람부터 돼라. 어머니, 저는 가난이 싫어요. 나는 네가 싫다.

돈이 필요했다. 아쉬웠지만 학업과 경제활동을 병행할 수는 없었다. 가출을 했고 짜장면집에 취직을 했다. 주방에 쪼그리고 앉아 양파를 까며 이런 노래를 불렀다. 지나간 세월을 뒤돌아보니 피눈물 장마가 눈앞을 가려. 정말로 눈물이 났다. 자식이 뭔지 어머니가 친구를 통해 항복 선언을 전해왔다. 신발 사놨으니 돌아와라. 가출 이틀째였고 짜장면집은 동네에 있었다. 정말 마루에 신발이 놓여 있었다. 어디든 데려다 줄 것 같고 승리를 보장해줄 것 같은 그 당당한 풍채에 목이 메었다. 새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뛸 때마다 머리가 하늘을 찧는 꿈 때문에 잠을 설쳤다. 81년 겨울, 중학생이 누릴 수 있었던 적정 행복.

그러나 그 신발을 오래 신지는 못했다. 오래는커녕 딱 하루였으니 동네 노는 형들이 야아, 이거 어제 내가 잃어버린 신발과 똑같네, 하며 바꿔 신고 가버린 것이다. 분해서 자다가 벌떡벌떡 일어났다. 나쁜 생각 끝에 같은 방법으로 신발을 확보하기로 결심했다. 밤이면 집 근처 석촌호수를 배회하며 발 크기가 비슷한 대상을 물색했다. 나이에 비해 발이 컸던 탓에 같은 문수를 신은 사람은 어른밖에 없었다. 좌절 끝에 병이 깊어졌다. 그때 알았다. 소중한 외투를 빼앗긴 끝에 화병으로 죽어 귀신이 되어 나타난다는 내용의 단편 소설, 고골의 '외투'가 환상문학이 아니라 리얼리즘 문학이라는 사실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 혹시 이 사람도?

그 뒤로 그 신발을 신어 볼 기회는 없었다. 대학에 가서는 '미제'라는 이유로(아잇 짜증나80년대!!!) 졸업하고는 운동화 대신 구두를 신어야 했기에. 자동차 트렁크에서 신발 박스 하나를 발견했다. 한 달 전인가 디자인이 예쁘다는 이유로 충동적으로 구매한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개구리는 아니지만 신발 한 켤레 때문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우리 국민들의 15년간 소득은 1.8배 올랐지만 삶의 질 상승은 1.3배에 그쳤다고 한다. 어이구 생각보다 많이 올랐네. 소득 말고 삶의 질 상승 말이다. 그렇게나 우리가 행복해진 줄은 몰랐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감흥이 없지. 왜 하나도 안 즐겁지. 요즘 어때요, 누가 물으면 나는 침통하게 이렇게 대꾸한다. 행복해요. 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