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정가 1000원짜리 아이스크림, 동네수퍼선 300원… 어떻게 된 거지?

◇일부 대형마트가 이제는 수퍼에 물건 대는 도매상 역할까지

최근 여기에 새로운 변수가 생겼다. 바로 대형마트 자체가 수퍼마켓의 제품 공급처로 떠오른 것이다. 한 수퍼마켓 주인은 "옛날에는 땡 처리 시장도 다니고, 대리점에서 밀어내기 하는 물량도 받아주고 했지만, 언젠가부터 대형마트 물건을 공급해주는 업자들이 생겼다"고 말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유통업체의 한 관계자는 "대형마트 본사 차원에서 일반 고객이 아닌 도·소매점에 대량으로 판매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며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부인했다. 그러나 식음료업계 종사자들의 말은 조금 달랐다. 한 중견 식품업체 관계자는 "일부 대형마트 지점에서 매출 목표에 미달한 MD(구매담당)들이 음성적으로 대형마트 특판물량 제품에 한해 물건을 싸게 구입해서 도·소매점에 공급하는 경우가 일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은 사실상 대형마트의 바잉파워를 이용해 수퍼마켓들도 싼 가격에 물건을 공급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한 수퍼마켓 주인이 소개해준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관련 정보를 검색해보니, "CJ올리브유 4900원(50박스), 해표포도씨유 1800원(400박스) 등 십여개 제품의 품목과 가격, 수량을 기재해놓고서 '서울·인천·경기권 배달 가능합니다, 문의 주세요"라는 글을 올려놓은 각종 게시물이 수두룩했다. 다루는 제품도 식용유에서 과자, 아이스크림까지 수퍼마켓에서 주로 팔리는 물건들이었다. 그중 한 업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공급처를 물었지만, "다 가져오는 방법이 있다. 그것을 왜 알려고 하느냐"는 답만 돌아왔다.

업자들은 할인 상품권을 이용해 또 다른 마진을 챙길 수 있어 소량이라도 대형마트 MD들을 통해 물건을 구입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예컨대 물건을 100만원어치 살 때 티켓링크같은 인터넷 할인 사이트에서 이들 업체의 상품권을 구입하면, 현금 95만원으로 100만원어치 상품권을 구해 대금을 지급하는 셈이기 때문에 5% 마진을 상품권으로 미리 챙길 수 있다는 것.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이런 현상들이 모두 대형마트의 가격이 싸다는 것을 방증해주는 것 아니냐"면서 "이미 전국에 400개 가까운 대형마트가 있기 때문에 어딘가에서는 '오픈 기념 할인행사' 같은 것을 하고 있고, 이럴 때면 수퍼마켓 업자들도 와서 물건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요지경 가격…누가 이익을 보나

한 빙과업체의 제품 가격이 지난 7년간 인상된 과정을 보면 요지경 세상이라는 생각도 든다. 지난 2004년 400원에 판매되던 A사의 제품은 2005년 500원, 2009년 700원에 이어 현재는 1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서울 영등포구 관악구 등 상당수 주택가 수퍼에서는 여전히 5년 전 가격인 500원에 판매되고 있고, 일부 지역에서는 300원에도 판매되는 곳이 있었다. 지난해 정부는 과자·라면·빙과류에 적용되던 '오픈프라이스' 제도를 시행 1년 만에 폐지했다. 오픈프라이스는 제조업체가 가격을 표시하는 '권장소비자가격' 대신 유통업체가 상품의 판매가격을 결정하는 것으로 판매점 간 가격경쟁을 촉진해 제품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도입했으나, 오히려 제조업체들이 공급가를 올리고 덩달아 유통업체 판매가까지 올라 이들 제품에 한해 다시 권장소비자가격을 표시하도록 제도가 바뀌었던 것이다.

결국 권장소비자가격은 다시 부활했지만, 1년 사이 제품 가격이 올랐고, 수퍼마켓은 이를 50~70%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권장소비자 가격이 높다 보니 소비자들로 하여금 싸게 산다는 '착시 현상'을 일부러 유발시키고 있다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였다. "결국 정가대로 표시된 가격을 다 내고 구매하는 소비자들만 손해를 보는 셈"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요즘은 일부 대형마트와 대기업들이 '창고형 매장'을 내걸고 일부 지역에서 직접 수퍼마켓이나 자영업자들에게 물건을 공급하는 도매상 영업에 나서기까지 했다. 김자혜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은 "권장소비자가격을 올려 '할인폭'을 넓히고 이를 통해 소비자를 유인하는 것은 결국 유통업체와 제조업체가 짜고 치는 '꼼수'는 아닌지 의심된다"며 "아무리 싼 가격이라고 해도 소비자들이 불공정한 거래의 손을 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6일 서울 강북구의 한 수퍼마켓에서는 신라면 5개 한 묶음을 2650원에 팔고 있었다. 지난 연말 가격 인상을 단행한 신라면의 권장소비자가격은 개당 780원, 5개 한 묶음은 3900원이다. 롯데마트의 온라인쇼핑몰에서 판매되는 가격 3170원보다도 훨씬 싼 가격이었다. 이 수퍼는 어디서 이 가격에 물건을 받아올 수 있었을까. 서울 시내 다른 수퍼나 대형마트와 비교해도 이보다 싼 가격에 판매하는 곳은 찾기 힘들었다. 농심 측은 "그 가격에 팔 수 있을 정도로 수퍼에 물건을 공급하지는 않는다"며 "손님을 끌기 위해 손해를 보고 장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수퍼 주인들의 말은 달랐다. 소위 '역(逆)마진', 손해를 보고 파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라면뿐만이 아니다. 본지가 서울 관악구·서대문구·강북구·동대문구 일부 수퍼마켓과 이마트·홈플러스 등 대형마트를 방문해 생필품 가격을 비교해본 결과, 가격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었다. 상당수 제품이 실제 표시된 권장소비자가격 이하로 팔리고 있었고, 대형마트라고 무조건 더 싸지도, 동네수퍼라고 무조건 비싸지도 않았다.

특히 일부 제품은 동네수퍼들이 '특별 할인'을 내걸고 대형마트보다 훨씬 싼 가격에 판매하고 있었다. 과거 '할인점'이라는 이름으로 대형마트들이 생겨날 때 실시하던 '가격 보상제'도 요즘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서 영세 수퍼마켓들이 뒤늦게 '가격'으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 한창 출점을 할 때는 '최저가격보상' 등으로 화제를 일으켰지만, 지금은 대형마트들이 안정기에 들어갔기 때문에 과거처럼 가격으로 마케팅을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블랙마켓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수퍼마켓들

서울 관악구의 한 수퍼마켓. 롯데 '크런키볼'(73g) '씨리얼컵'(94g) '칸쵸'(100g) 등의 과자를 1000원에 팔고 있었다. 포장지에 표시된 권장 소비자 가격은 모두 2000원. 인근 홈플러스익스프레스에서는 같은 제품을 1590~16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또 다른 수퍼에선 1000원이라고 표시된 빙그레 빙과 '비비빅'(80㎖)과 롯데삼강 '보석바'(80㎖), 해태 '바밤바'(70㎖)를 모두 3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대형마트에서는 같은 제품을 5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반값에 파는 대형마트에 맞서 수퍼마켓들은 더 싼 30% 가격을 내건 것이다. 이 지역 수퍼마켓들에서는 8000원짜리 고급 아이스크림도 24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만약 대형마트들이 '최저가격 보상'을 해준다면 어마어마한 차액을 소비자들에게 물어줘야 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이 제품들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모두 '블랙마켓'을 통해서 흘러나온 제품들로 추정된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대형마트 이외에는 '싼 가격'에 물건을 가져올 수 있는 '바잉 파워(buying power)'를 가진 사람은 없다"면서 "일부 수퍼에서 판매되는 그런 제품은 대리점이나 영업소 직원들이 실적 부담 때문에 '덤핑'으로 밀어낸 상품이 유통되는 '무자료' 거래 시장을 거친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 파워가 없는 동네 수퍼들이 값싼 상품을 구비하기 위해 이런 덤핑 상품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수퍼 주인들은 제품의 '출처'에 대해 함구했다. 제조업체들 역시 "그런 가격으로 공급하는 것은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한 유명 가공식품 업체 관계자로부터 실상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일부 지역 대리점주가 판매 목표 100%를 달성해서 '판매장려금'으로 적자 부분을 메울 수 있다고 판단할 경우 재고물량을 싼값에 풀어 덤핑을 감행하거나, 수퍼마켓끼리 가격 경쟁이 붙어서 출혈경쟁을 벌이는 등 다양한 요인이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 일시적이고 지엽적인 현상들"이라며 "지속적으로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