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TALK] 7시간 22분, 스크린엔 두 사람 대화와 독백 뿐… 그래도 객석의 반 이상이 찼다

"잠깐 졸았죠, 당연히."

9일 오후 10시 10분 서울 종로 낙원상가 4층에 있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보고 나온 화가 황주리씨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가 본 영화는 독일 출신 한스 위르겐 지버베르그 감독의 '히틀러: 독일로부터의 영화'. 무려 7시간 22분짜리다.

지난달 12일 개막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특별섹션에 선정된 이 영화는 9일 단 하루만 볼 수 있었다. 1~4부로 나눠진 이 영화는 오후 1시부터 오후 9시 40분까지 네 번으로 나눠 상영됐다. 극장 측은 "전회 100석 이상씩 팔렸다"고 했는데 막상 가보니 300석짜리 극장의 절반 이상이 찼다. 2부나 3부가 시작할 때쯤 극장에 새로 들어오는 관객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 상영 중 극장을 나가는 관객은 거의 없었다. 40~60대 예닐곱 명을 제외하고는 관객 대부분은 20~30대였다.

1977년 제작된 '히틀러: 독일로부터의 영화'는 기획하는 데 4년이 걸렸지만, 촬영은 20일 만에 마쳤다. 7시간이 넘는 영화를 20일 만에 찍을 수 있었던 것은 영화가 연극무대 같은 한정된 공간에서 독백이나 두 사람의 대화로만 진행되기 때문이다. 대화나 독백 내용은 제목 그대로 '히틀러'와 '독일', 그리고 '영화'에 관한 것이다. 꽤나 무거운 주제여서 집중하지 않으면 중간에 졸 수 있는 내용이었다. 실제 영화 중간에 고개를 의자 뒤로 젖히고 잠깐 눈을 붙인 관객들도 눈에 띄었다. 객석에서 유일하게 웃음소리가 들렸을 순간은 3부 중간쯤 독백을 하던 배우가 스크린을 향해 "왜 안절부절못하고 그러나? 지루해서 그런 거 다 안다"는 대사가 나왔을 때였다.

이쯤 되면 "왜 이런 고생 해가며 영화를 보느냐"는 질문이 나올 만하다. 성세정(26)씨는 "감독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지만 미국 유명 작가인 수전 손탁이 꼽은 10대 영화라서 보러 왔다"고 했다. 김지원(31· 학생)씨는 "서양사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이라 예전부터 이 영화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20대 관객들 중 서너 명은 "영화 한 편이 442분짜리라는 데 호기심이 생겼다"고도 했다.

관객 반응은 대체적으로 "지루하고 졸려도 볼 만했다"는 것이다. 신설형(22·학생)씨는 "1부 중반서부터 계속 졸다가 3부 중간에 나가버리려고 했는데 그때까지 본 게 아까워서 그냥 참았다. 그래도 442분짜리 영화를 다 봤다는 게 뿌듯하다"고 했다. 황영찬(25·학생)씨는 "'쇼아'도 봤기 때문에 상영시간에 대한 압박은 없었다.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오히려 흥미진진했다"고 했다. 유대인 홀로코스트를 다룬 다큐멘터리 '쇼아'(1985)는 이 영화보다 두 시간 정도 긴 9시간 26분(566분)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