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자, 한 자, 침이 고이네

시 전문 계간지 '시인세계'가 '내 시에 담긴 음식-음식을 쓰고 시를 맛보다'를 이번 봄호 기획특집으로 펴낸다. 16명의 시인이 시와 산문으로 빚어낸 '시의 밥상'이다. 홍윤숙 김종해 김광규 유안진 이수익 이건청 황학주 김승희 박주택 안도현 이재무 정끝별 김언희 손택수 최금진 고영민이 그 시인들의 이름이고, 묵은 김치, 아귀탕, 흰 쌀밥, 구운 감자, 잔치국수, 도다리회, 갱죽, 컵라면, 두루치기, 홍어, 흰죽 등이 시인들이 빚어낸 요리의 이름들이다.

평북 정주 출신의 시인 홍윤숙에게 김장은 월동 식품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북국의 겨울은 빠르고도 길었으니까. 대략 시월부터 이듬해 삼월까지 한 해의 절반 가까이 되는 긴 겨울, 고향의 김치는 반 양식이었다고 했다.

"양념이란 것도 별로 없다. 파도 흔치 않아 생마늘 다진 것에 백화젓(새우젓)이면 그만이다. 무채 따위는 쓰지도 않았다. 숟갈로 무 속 몇 개 박박 긁은 것을 고춧가루 양념해서 큰 대독에 배추 한 켜 무 한 켜 켜켜로 다져 넣고 소금물 몇 동이 백화젓 국물 섞어 부으면 다였다. 김치 포기 속엔 동태 한 토막도 생새우 새끼 한 마리도 없었다.(……) 그것은 아무것도 섞지 않은 그저 잘 삭은 배추나 무 천연의 맛, 흡사 약수 같은 시골 물맛, 외기의 변화를 별로 타지 않게 김치광 깊숙이 파묻은 흙의 맛,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북국의 쩍쩍 얼어붙는 얼음 맛, 눈 맛, 바람 맛이라고나 할까. 담백하고 시원한 고향의 기질을 닮은 맛이라고나 할까."

시인 김승희는 '하아얗게 사리 지은 국수를 양껏 담고/ 그 위에 금빛 해 같은/ 노오란 달걀 지단 채 썰어 올려놓고/ 하아얀 달걀 지단 따로 채 썰어 올려놓고/ 파아란 애호박, 주황빛 당근도 채 썰어 볶아 올려놓고'라며 잔치국수를 예찬하고, 안도현은 '시래기에 묻은/ 햇볕을 데쳐// 처마 낮은 집에서/ 갱죽을 쑨다'며 '갱죽'의 슬픈 가난을 노래한다.

혀를 통해 감지된 가장 원초적 미각의 기억, 단순히 먹거리가 아니라 삶의 무상함을 위무하고 존재를 되새김하게 만드는 영혼의 음식들이 이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