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의 생로병사] 인간 고령사회 미리 보는 것 같은 ‘애완견 노령화’

'뚱이'는 일주일에 3번, 1시간씩 물 위를 걷는다. 수조 안에 설치된 특수 러닝머신 위를 구른다. 몸이 물에 반쯤 잠긴 체 하는 걷기 물리치료다. 애완견 '뚱이'는 퇴행성 무릎 관절염을 앓아서 운동부족 상태다. 물속 육상 훈련을 통해 하체 근육을 단련하는 중이다. 부력으로 중력의 부담을 줄여서 무릎 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고 다리 근육을 다질 수 있다. 관절염 어르신 환자들이 수영장에서 에어로빅을 하는 '아쿠아로빅' 치료와 같은 원리다.

'뚱이'는 태어난 지 15년 된 몸집이 작은 개다. 소형견의 수명이 약 18년이니까, 사람으로 치면 70세쯤 된다. 노화로 점점 기력을 잃고 움직임이 둔해졌는데 '보호자'를 잘 둔 덕에 수중운동을 하면서 걸음걸이가 한결 나아졌다. 최근에는 줄기세포 치료도 받았다. 자기 몸속의 줄기세포를 실험실에서 증폭시켜 다시 이식받아 활력을 늘리는 치료다. 1회 비용이 100여만원이다.

생활환경이 좋아지고 의학이 발달하면서 '노령견'이 늘고 있다. 기자가 얼마 전에 가본 서울의 한 동물병원은 별세상이었다. '가축병원'이라는 말은 사라진 지 오래다. '애견 메디컬센터'로 진화됐다. 병원 로비 한쪽의 숍(shop)에는 애완견 주전부리가 그득하다. 닭가슴살·양갈비·소갈비·오리가슴살·연어포 등이 비닐 포장에 가득 담겨 손님을 기다린다. 사람들의 즉석 술안주로 쓰면 적당한 것들이다. 녹용이 함유됐다고 써놓은 영양제도 눈에 띈다.

외래진료실에는 만성질환견(犬)들이 즐비하다. 비만과 운동부족으로 당뇨병을 앓는 개들이 부쩍 늘었단다. 주인의 생활습관은 애완견에게도 전이된다. 그들은 혈당 검사를 받고 약물처방을 받아간다. 견공(犬公)들은 말을 못 하는 덕(?)에 한 번 진료에 20~30분이나 걸린다. CT실 앞에는 척추 디스크 환자가 순서를 기다리고, 초음파실에는 심장 판막 질환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정형외과에는 퇴행성 변화로 어깨 관절이 탈구된 환자가 보호자 품에 안겨 있고, 안과에는 망막 검사를 받는 환자가 몰려 있다. 백내장이 늘면서 개의 수정체를 인공수정체로 갈아 끼우는 수술도 부쩍 활발하다.

중환자실에는 '예삐'가 폐렴으로 입원해 있고, '막내'는 만성폐쇄성 폐질환으로 산소 치료를 받고 있다. '앵두'는 신장 투석을 받고 있으며, '찡찡'이는 요로 결석 제거 수술을 받고 누워 있다. 각자의 케이지(cage·동물 우리)를 쓰는 '1견1실'이다. 환자 이름은 모두 가족같이 정감 있고 부르기 좋은 두 글자이다. '바둑이'와 '점박이'는 이제 없다.

보호자들은 수시로 면회를 온다. 인터넷으로 병실 모습이 24시간 중계되는 '웹 캠'(web camera) 서비스로 집이나 직장에서도 '뭉치'나 '뽀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길을 걷다가도 스마트폰으로 환자 상태를 체크할 수 있다. 환자의 기저귀가 더부룩하면 기저귀를 빨리 갈아달라는 전화가 새벽에도 병원으로 온단다. 치료 결과에 불만을 가진 보호자와 병원 간에 의료분쟁도 종종 생긴다.

'산책금지' 푯말이 붙은 '태평'이는 면역기관에 암이 생긴 림프종으로 항암 치료를 받고 있다. 면역력이 떨어져 외부 출입이 차단된 채 보호된다. 수명이 늘면서 애완견에도 암이 급속히 늘고 있는 것이다. 유방암으로 한쪽 가슴에 달린 5개의 유방을 모두 제거하는 대수술도 이뤄진다. 뇌암 치료를 위해 매일 맞는 항암제는 한 번에 2만원이다. 평소에 잘 가리던 똥오줌을 못 가리고, 방 한쪽 구석에 온종일 쭈그려 앉아 있거나, 한 방향으로 계속 돈다면 치매를 의심해야 한다. 요즘 와서 치매 약 처방이 늘고, 우울증 약도 많이 나간다.

내시경 시술, 복강경 수술, 초음파 요석 쇄석술 등 가능한 한 흉터를 적게 내고 치료하는 최소침습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동물 의료비는 날로 급증해 인간 의료수가를 뺨친다. 고가의 방사선 치료와 인공관절, 임플란트도 도입될 예정이다. 수년 전 민간보험회사들이 애완견 건강보험 상품을 팔았다가 적자를 내고 죄다 접었다. 폭증하는 진료건수와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생존기간을 얼마나 늘리느냐에 따라 고가 항암제를 쓸지, 소생 가능성이 희박할 때 언제 연명치료를 중단할지도 열렬 보호자들에게 새로운 고민거리다. 전염병과 기생충 질환으로 동물 평균 수명이 10년밖에 안 됐던 1980년대에는 감히 상상도 못 했던 부분이다. 이제 보호자의 경제수준에 따라 호스피스 치료를 받다가 안락사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유기견으로 버려지는 '양극화'도 진행된다.

이쯤 되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바로 우리들의 얘기다. 애완견이 사람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반려(伴侶)동물이 되면서, 그들과 우리는 고령화의 진통을 똑같이 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