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로 해주던 업무에도 수수료를…야박한 은행

충남의 한 건설자재 업체 A 사장은 지난해 4월 자금 사정이 갑자기 나빠져 10억원을 1년 단기 대출받았다. 6개월 뒤 자금 사정 숨통이 다소 트이자, A 사장은 10억원 중 6억원을 상환했다. 그런데 은행에서 당초 약속했던 10억원 대출 한도 중 사용하지 않은 6억원에 대해 90만원의 '미사용 한도 수수료'를 받아갔다. A 사장은 "3~4년 전만 해도 이런 수수료를 받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 은행 영업이 심해졌다"며 "6개월간 대출 이자만 4350만원 받아가 놓고, 한도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수료까지 다시 챙기는 것은 금액이 많고 적고를 떠나 지나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은행에서 미사용 한도 수수료, 조기 상환 수수료 등 각종 명목으로 매기는 수수료는 대출 이자에 비해 금액은 크지 않지만, 자금 사정이 어려운 중소기업들에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중소기업 사장들은 "소상공인 카드 수수료 못지않게, 은행권의 각종 수수료 부담이 가뜩이나 나쁜 경제 상황에서 부담이 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중기 "수조원 이익 내는 은행이 각종 수수료까지…"

경남 소재 중기 대표인 권모 사장은 중도 상환 수수료 문제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주 거래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고 있는 권 대표는 "금리를 약 1%포인트 가까이 낮게 해준다는 다른 은행을 찾았는데, 수백만원에 달하는 중도 상환 수수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목이 잡혀 있다"고 말했다. 보통 시중은행은 0.5%에서 1%를 중도 상환 수수료로 받고 있다. 지난 1월 중소기업중앙회가 전국 491개 중소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63.6%가 은행 거래 시 부담하는 각종 수수료가 높다고 답했다. 중소 제조업체가 내고 있는 은행 수수료는 주로 50만~100만원(26.2%) 선이라는 답변이 많았지만, 연간 700만원 이상 수수료를 내고 있는 기업(15.1%)도 적지 않았다. 특히 당기순이익과 비교해봤을 때, 당기순이익 1억원 미만인 중소 제조업체 중 28%가 연간 200만~500만원, 14%가 700만원 이상 은행 수수료를 지불한다고 답해 은행 수수료 부담이 기업 운영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기 때문에 중소기업계에서는 "은행이 수수료를 받아 과도하게 이익을 챙기고 있다"며 불만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것이다.

지난해 국내 은행은 수수료로만 5조원에 달하는 이익을 챙겼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국내 18개 은행 수수료 관련 이익은 4조9000억원으로 2010년보다 11%(5000억원)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특히 이러한 은행들의 수수료 수입은 주로 기업을 대상으로 거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ATM 등 서민 생활과 관련한 '대고객 수수료'는 2009년 6070억원에서 지난해 5070억원으로 줄어들었지만, 기업 업무와 관련된 '기타 업무 수수료'는 2009년 4조6200억원에서 지난해 5조1200억원으로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중기중앙회 조유현 정책본부장은 "은행이 수익 구조 다각화를 통해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이자 수익 외의 것을 찾다보니, 과거에는 서비스 차원에서 제공했던 업무에 수수료를 물리고 있다"며 "이런 수수료가 자금 사정이 열악한 중소기업에는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들 "수수료 부과는 정당"

은행들은 "기업이 대출 약정한 금액을 언제 빌려갈지 모르기 때문에 실제 기업이 돈을 빌리기 전이라도 약정금 일부를 은행에 쌓아두고 있어야 해 미사용 한도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이라며 "수수료 부과는 기업의 과도한 대출 약정 한도를 줄이자는 취지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국민은행 등에서는 수수료를 받지만, 신한은행은 받지 않는 등 은행마다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