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雪山의 오선지… 당신, 선율이 들리나요

희디흰 설산(雪山)에 쉰 개의 검은 울타리. 나무를 엮어 만든 눈사태 방지용 울타리의 모양새는 오선지 위 음표들을 닮았다. 자연과 인공의 접점에 펼쳐진 이 악보를 연주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고요다. 정적(靜寂)의 데시벨을 최대치로 높여놓은 듯한 이 흑백 사진의 제목은 '쉰 개의 울타리'. 사진가 마이클 케나(Kenna·59)가 2004년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다이세쓰잔(大雪山)에서 찍은 것이다.

"호수 건너편에 눈 덮인 산이 펼쳐져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니 산과 울타리의 조합이 악보를 떠올리게 했다. 음악적 울림의 세계. 다른 사람들을 이 세계로 초대할 수 있길 바라며 사진을 찍었다."

마이클 케나 사진전 '고요한 아침'이 내달 18일까지 서울 삼청동 공근혜갤러리에서 열린다. 전시에 나온 사진 52점은 1977년 무렵부터 지난해까지 세계 각국의 아침 풍경을 담은 것이다. "다시 태어나고, 다시 깨어나고, 신선하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아침'의 분위기를 담고 싶었다"고 작가는 설명했지만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아침의 활기와는 거리가 멀다. 한결같이 고즈넉하고 여백이 많은 풍경.

2011년 작 '산 나무'는 충북 단양에서 촬영한 것. 눈 쌓인 산등성이에 홀로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를 카메라에 담았다. "'고독'의 느낌을 담고 싶었다. 인간은 어차피 고독한 영혼을 지니고 홀로 살아가는 존재니까."

영국 출신으로 197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서 살고 있는 케나는 30여년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풍경 사진을 찍어왔다. 현재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 예정지인 평창을 집중 촬영 중인 케나가 한국 풍경을 찍기 시작한 것은 2005년 무렵부터. 2007년 그가 촬영한 강원도 삼척 모래톱의 솔섬 사진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자 국내 사진가들과 시민단체는 LNG 생산기지 부지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삼척 솔섬 보존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 운동은, 솔섬은 보존하고, 솔섬 뒤쪽 모래톱 일대에만 공장을 세우기로 결론이 나면서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케나의 사진은 항상 흑백. "사진을 악기에 비유하자면 흑백 사진이 내가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악기다. 컬러 사진은 지나치게 시끄러운 것 같은 느낌이다." 깊이 있는 풍경을 찍지만, 막상 인화된 사진은 8×10인치(201㎜×252㎜)로 작은 편. 케나는 "관객이 사진 속 풍경에서 친밀감을 느낄 수 있으려면 크기가 작아야 한다. 나는 스펙터클함보다는 친밀감을 중시한다"라고 했다. 그 '친밀감'의 힘일까. 지난해 2월 공근혜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땐, 201㎡(61평) 규모 화랑 전시로서는 드물게 한 달간 9000여명의 관객을 모았다. 관람료 3000원. (02) 738-77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