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째 중화요리집… 추억의 맛으로 60년 지켜

경기도 파주시청 소재지의 재래시장인 금촌시장 골목에 자리 잡고 있는 중화요리집 덕성원(德盛園). 주인 이덕강(57)씨는 매일 아침 8시30분이면 이곳에 나온다. 근처 시장에서 식재료를 구입하면서 그의 일과는 시작된다. 9시쯤 종업원들이 나오면 손님맞이를 준비한다. 간단하게 아침을 차려 원탁에 둘러앉아 함께 늦은 아침을 먹고 11시에 문을 연다. 바쁜 점심 시간을 보내고 오후 3시 다시 늦은 점심을 먹고 저녁 손님을 받을 준비에 들어간다. 오후 11시가 돼서야 하루 장사를 마무리하고 집에 들어간다.

이씨는 파주에서만 3대째 중화요리집을 이어오고 있다. 대만 출신 화교인 이씨의 할아버지는 일제시대에 한국으로 건너왔다. 언제부터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파주 문산에서 아들(이씨의 부친·2009년 작고)과 함께 중국집을 했다. 그러다 6·25 전쟁 이후인 1955년에는 다시 지금의 금촌시장으로 옮겨왔다. 어림잡아 60년은 되는 셈이다. 이씨도 아버지로부터 식당을 물려받은 1982년쯤부터 30년을 한결같이 한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일을 시켜 너무 힘들었고, 이것만은 안 한다고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던가 봅니다." 2남 3녀 가운데 둘째 아들인 이씨는 지금 덕성원이 있는 자리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초가였지만 1970년대에 2층 건물을 새로 지었고 몇 차례 수리를 거쳤다. 그는 아버지가 외삼촌 등과 함께 땀흘리며 면을 뽑고, 불판을 잡는 것을 보며 자랐다. 음식점을 물려받고도 건물 2층을 계속 살림집으로 쓰다, 2년 전에야 인근의 아파트로 옮겼다.

이씨는 서울의 화교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방학이면 아버지는 그릇을 닦고, 행주를 빠는 것부터 시키고 가르쳤다.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하고 한때 그릇장사도 했지만 결국 중국집 주방으로 들어섰다. 이씨는 "형이 물려받기 싫다고 해서 내가 나섰다"며 "무엇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어서 남다른 애착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생활을 묵묵하게 지켜오고 있다. 기껏해야 매달 두 번인 정기 휴일을 따로 챙길 수 있을 따름이다.

이씨 일가가 대를 물려온 덕성원은 파주에서 전통을 자랑하는 맛집으로 꼽히고 있다. "맛이 없었다면 어떻게 60년을 유지할 수 있었겠느냐"는 이씨의 말에 자부심이 담겨있다. 특히 귀대하는 군인들은 으레 이곳에서 만나 푸짐한 짜장면, 탕수육을 즐겼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도 없고, 군인뿐이더라"는 농담을 듣기도 했고, 요즘도 전역한 동료들이 모임 장소로 쓰기도 한다. 다들 "군대 시절 추억의 맛을 못 잊어서 왔다"는 얘기를 한다. 파주 출신인 배우 사미자씨도 어린 시절에 자주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옛날처럼 북적이지는 않는다. 새로 큰길이 나면서 상권이 옮겨갔고, 군인들도 외출·외박을 더 멀리까지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좁은 시장 골목에 터를 잡아 주차장을 갖추기도 어려웠다. 신혼 때부터 중국집을 맡아 함께 일해온 부인 정명숙(56)씨는 "아버님으로부터 물려받아 30년이 넘은 단골 손님들도 많기 때문에 비록 힘이 들지만 재미가 더 크다"고 했다. 이씨도 "큰 곳으로 이전을 고려했지만 오히려 단골들이 '추억이 깃든 장소인데 안 된다'고 말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봉사활동에도 열심이다. 11년째 매달 한 번씩 보육원 아이들을 불러 공짜로 요리를 대접하는 일을 빠뜨리지 않는다. 중국집 주인 18명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파주시 중화요리협회의 회장도 맡고 있다. 이달 22일에도 청소년음악회에서 약 800명분의 짜장면 봉사활동에 나설 예정이다. 각자 음식을 만들어 오고, 함께 모여 면을 뽑는다. 이씨는 최근 파주시가 전문성·창의성을 바탕으로 해당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을 찾아내 선정한 '파주 으뜸이'로도 뽑혔다.

이씨는 외아들인 진성(27)씨에게도 가업을 물려주려 한다. 진성씨는 고등학교부터 중국 본토에 유학해 국제무역 전공으로 대학까지 마쳤지만, 2년 전부터 일을 거들며 배우고 있다. 그동안은 배달이나 서빙을 맡겨왔지만 다음 달에는 요리학원에 보내 제대로 수련토록 할 예정이다. 이씨는 "중국집은 주인이 주방일을 손수 할 줄 알아야 제대로 관리가 되기 때문"이라며 "말리고 싶었지만 스스로 선택한 일이고, 대를 잇는다는 보람도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