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화교 담걸생, 어떻게 경성 최고부자 됐나

1923년 경성의 개인납세액 1위가 담걸생(譚傑生·1853~1929)이라는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담걸생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조선에서 활동한 화교상점 동순태호(同順泰號)의 사장이었다. 중국 경제사 연구자 강진아 경북대 교수는 담걸생과 동순태호의 성장과 몰락을 중심으로 한국 화교자본의 부침을 분석한 '동순태호－동아시아 화교자본과 근대 조선'(경북대출판부)을 펴냈다.

광동성 출신으로 스무살 무렵 상해에 이주한 담걸생은 매형이 개설한 동태호(同泰號)에서 점원으로 일하다 1882년 원세개의 조선 부임으로 청의 정치적 입김이 강화되자, 동순태호를 설립했다. 담걸생은 청―조선의 수출입 무역에 나섰다. 이때부터 기선회사 설립과 한강 항행권, 조량미의 독점적 운영권을 획득하고, 각종 국책 사업에 참여한다.

◇경성 택시 70% 점유

담걸생의 동순태호는 1903년 조선 사회의 주목을 끌게 된다. 조선 민중과 상인들이 동순태호가 발행한 어음인 동순태표 발행 금지를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난 것이다. 일개 상점 어음에 불과했던 동순태표는 신용도가 높아 고액 결제화폐가 부족한 조선 시장에서 화폐처럼 유통됐다. 국권 침탈의 위기에 처한 조선인들은 이를 화폐주권 침해로 받아들였다. 결국 동순태호는 어음 발행을 중지했지만, 화교 기업인의 영향력을 그대로 보여줬던 사례로 기록된다.

중국에서 주로 비단과 마포를 수입하던 담걸생은 서양 가구, 피아노, 망원경, 전축, 유리, 일본산 기린맥주에 이어 중국 복권까지 취급했다. 1920년대엔 미국에서 대당 1만원인 최신형 고급차인 커닝햄을 수입해 미카도 택시회사를 창업했다. 대당 4000원짜리 포드차가 대부분인 택시 시장에서 단연 독보적 존재로 떠올라 20년대 말엔 경성 택시의 70%를 점유했다.

담걸생은 이어 부동산에 주력한다. 을지로 2가에 있던 2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을 한성본사로 썼고, 명동의 3층 빌딩은 시대일보 사옥으로도 쓰였다. 담걸생은 1923년 경성의 도시토지세·가옥세·호구세 분야 모두 개인 납세액 1위를 차지했다. 1932년 경성부 공식발표에 따르면 전체 7만 호 가운데 1만1865호가 임대주택이었는데, 그 중 동순태호가 350호를 소유하고 있었다. 경성 임대주택 34채 가운데 하나는 동순태호 소유였다는 얘기다.

◇차남의 불법추문으로 몰락

동순태호를 비롯한 중국인의 경제적 번영은 일본의 견제를 불러왔다. 조선총독부는 1924년 사치품 등 중국에서 오는 수입품 관세를 대폭 인상했고, 수입상 위주의 화교 사회는 타격을 입었다. 비슷한 시기, 동순태호를 풍비박산으로 몰고 간 위기가 찾아왔다. '백만장자 중국인 거부 동순태의 아편 밀매, 홍삼 밀수출, 사기사건.' 1924년 8월 한여름, 경성의 언론은 떠들썩했다. 담씨의 차남 정곤 등 가족이 수십년간 아편 밀매와 홍삼 밀수출을 해왔다는 소식에, 정곤의 여성편력까지 보도되면서 동순태호는 부도덕한 기업으로 몰렸다. 빚에 몰린 담걸생은 실의에 빠져 1929년 76세로 세상을 뜬 후 고향인 광동성 고요현에 매장됐고, 1937년 중일전쟁 발발로 남은 가족들도 모두 조선을 떠났다.

강진아 교수는 서울대 규장각과 중앙도서관 고문헌자료실에서 우연히 동순태호의 거래장부, 상업 서신 등을 발견해 연구를 시작했다. 강 교수는 "담걸생과 동순태호는 19~20세기 동아시아 경제 네트워크 속에서 화교의 역할을 설명하는 훌륭한 단서"라며 "2004년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 됐지만, 중국은 최근 100년을 제외하면 2000여년간 줄곧 한국의 최대 교역 파트너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