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상] 신용불량자의 18%… '패가망신' 회사빚 연대보증 없앤다

지방의 전문직 종사자인 문모(49)씨에게 지난해 6월 한 은행으로부터 '임대차보증금 가압류'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자영업자인 친척이 돈이 너무 급하다고 해 보증을 서 줬던 7000만원이 연체됐으니 연대보증인인 문씨가 이자까지 9000만원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친척의 가게는 문을 닫았고, 한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다. 결국 지난해 말 그는 은행과 협상해 7500만원을 갚기로 하고, 신용대출에 마이너스통장으로 메워야 했다. 그는 "보증의 '보'자만 들어도 자다가 깬다"고 했다.

빚보증은 한국인에게 가장 큰 공포 중 하나이다. "보증 좀 서달라"는 친척이나 친구의 말을 거절하지 못해 패가망신한 사람이 적지 않다. 2003년부터 2011년까지 빚을 도저히 갚을 수 없어 신용회복위원회에 채무 조정을 신청한 신용불량자의 18%는 빚보증이 화근이 된 것으로 조사됐다. IBK경제연구소가 최근 3년간 창업한 42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25.1%가 연대보증에 따른 고통을 겪었다고 대답했다. 회사 대표가 직접 피해를 입은 경우가 6.5%이고, 18.6%는 친척·지인이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개인이 은행에서 가계 자금 용도로 돈을 빌릴 때 보증인을 세우는 제도는 2008년 폐지됐다. 그러나 기업이 돈을 빌릴 때는 여전히 연대보증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인을 친인척으로 둔 사람들은 여전히 연대보증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새누리당과 금융위원회는 14일 당·정협의를 하고 연대보증제도 개선안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오는 5월부터는 자영업자 등 개인사업자가 은행이나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에서 대출이나 대출보증을 받을 때 연대보증인을 세우지 않아도 된다. 또 법인이 대출받을 때도 회사의 실제 경영자만 연대보증을 서면 된다. 이른바 '바지사장' 등 임원과 친인척을 줄줄이 내세워 연대보증을 서게 하는 관행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이주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연대보증제도는 그동안 '인생 연대실패' 제도로 인식돼 왔다"며 "한 번의 창업 실패가 인생 좌절로 이어지는 족쇄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에 따르면 현재 기업의 대출에 연대보증을 선 사람이 80만명에 이른다. 개인사업자 연대보증인이 19만명, 법인사업자 연대보증인이 61만명이다. 개선안이 시행되면 앞으로 5년 동안 이들 중 44만명이 연대보증 족쇄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금융위는 전망했다. 신규 대출에 대해서는 바로 시행하고, 기존 대출 연대보증인은 각 금융회사가 계획을 세워 단계적으로 줄여나가게 된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보증인을 여러 사람 내세우면 편하고 대출 회수가 확실하다는 이유로 은행들이 관행적으로 연대보증을 요구해 왔다"면서 "은행 본연의 심사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연대보증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선안이 거꾸로 중소기업 대출을 위축시키거나 대출 금리를 올릴 수 있어 면밀한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번 개선안은 은행과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에만 적용된다. 윤창호 금융위 산업금융과장은 "은행이 기업 대출의 9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효과가 클 것"이라며 "보험사·저축은행 등 다른 금융기관에도 연대보증을 없애는 방안을 순차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