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티김 "가수 인생 54년… 할머니 김혜자로 돌아갑니다"

"노을이 온 세계를 붉고 화려한 색으로 장식할 때의 모습으로 여러분 기억에 남고 싶습니다."

꼭 끼는 캐주얼 정장에 빨간 하이힐을 신은 '백발의 디바' 목소리가 떨렸다. 지난 54년간 격이 다른 가창력과 우아하고 당당한 무대 매너로 한국 가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가수 패티김(74)이다.

1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오는 6월부터 1년간 국내외에서 진행될 고별 공연을 끝으로 가수를 은퇴하겠다"고 말했다. 패티김은 "(은퇴를) 10여년 전부터 진지하게 고민해왔다"고 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 전까지 가족과 극소수 지인에게만 은퇴 사실을 알렸다고 했다. 피날레 공연을 어떻게 할지 상의했던 후배는 '가왕(歌王)' 조용필이다. 마지막 공연 타이틀을 '이별'이라 정해준 것도, 첫 공연 장소를 가능하면 많은 관객이 모일 수 있는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으로 추천해준 이도 조용필이라 했다.

1958년 미8군 무대를 통해 데뷔한 패티김. 박춘석·길옥윤 작곡가와 콤비를 이루며 '초우'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빛과 그림자' 등 수많은 히트곡을 쏟아냈다. 한국 대중음악의 한 축이 된 스탠더드 팝의 여왕으로 사랑받았다. 한국 대중가수로는 처음으로 서울 세종문화회관(1978년)과 미국 카네기홀(1989년) 무대에 섰고, 한국 최초의 뮤지컬('살짜기 옵서예' 1966년) 여주인공이라는 타이틀도 갖고 있다.

은퇴를 알리는 날 패티김은 무대를 두려워했던 기억을 털어놓았다. "무대에 설 때마다 늘 심장이 폭발할 듯 긴장했어요. 차라리 천재지변이 일어나 공연이 취소됐으면 하고 바랐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늘 저를 짓눌렀습니다."

오는 6월 2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을 시작으로 국내 주요 도시와 교포들이 많이 사는 LA·뉴욕·시드니 등 해외 도시를 돌며 1년여간 펼칠 최후의 무대는 전에 없이 화려하고 다채롭게 꾸며진다. 공연마다 동료 가수와 아이돌 후배 가수들이 등장하며 오케스트라·밴드·무용단 등 200여명이 한무대에 선다.

패티김은 가수를 은퇴한 뒤 유료 공연은 일절 하지 않기로 했지만 자신의 노래가 꼭 필요한 자선과 위로의 자리가 생긴다면 기꺼이 나설 계획이라고 했다. "둘째 딸 카밀라가 임신 7개월이라 조금 있으면 세 번째 외손주가 태어나요. 이제 평범한 할머니 김혜자(본명)로 돌아가 딸·손자·손녀랑 시간 많이 보내야죠. 너무나 노래가 부르고 싶으면 거울 보고 혼자서 부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