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도서관을 10년간 장물 창고로… 공소시효 착각해 덜미

훔친 문화재 9400여점을 10년간 대학 도서관에 맡겼다가 빼내 팔아치운 일당 4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대전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5일 문화재를 장물업자 등에게 팔아넘긴 혐의(문화재보호법 위반)로 건설업자 백모(63)씨 등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에게 훔친 문화재를 판매한 박모(61)씨는 문화재 절도죄 공소시효(10년)가 지나서 입건하지 못했다.

경찰에 따르면 건설업자 백씨는 1995년 4월 경북 성주군 수륜면 한 종가 소유의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 교지(敎旨) 85점과 한강문집 300여점을 박씨로부터 매입하는 등 2000년 초반까지 박씨가 훔친 문화재 9415점을 사들였다.

문화재 절도 6범인 박씨는 고문서 털이를 전문적으로 해 왔으며 관리가 소홀한 전국의 사당이나 고택, 종가 등지를 주로 노렸다고 경찰은 말했다. 경찰은 "고문서는 관리가 허술한데다 잃어버려도 피해자가 금방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라며 "그러나 절도 공소시효인 10년이 이미 지났기에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결과 박씨가 훔친 문화재들을 사들인 백씨는 '공소시효'를 넘겨 처벌을 면하기 위해 2007년 7월 대구의 모 대학에 "학술 연구용으로 활용하라"며 보관 위탁을 했고, 10년이 지난 2010년 7월 맡겼던 문화재들을 다시 빼냈다. 백씨는 대학측에 "문중에 잠시 보여준 뒤 다시 가져오겠다"고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경찰은 밝혔다.

백씨는 이 가운데 4856점을 장물업자 황모(53)씨 등 3명에게 1억 5000만원에 팔아 넘겼고, 나머지 4559점은 보관 중인 상태였다. 경찰은 "백씨 등은 대학에서 문화재를 빼낸 순간부터 문화재를 밀반출한 것이고, 이를 장물업자에게 판 것은 불법 매매행위에 해당한다"며 "공소시효가 지난 문화재 절도죄와는 상관이 없이 처벌이 가능하고 문화재도 압수가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백씨가 장물업자 황씨에게 문화재 4856점을 1억 5000만원에 넘겼으나, 실제 감정가액은 30억원 가량일 것으로 추산했다. 경찰은 백씨가 보관하던 문화재들도 20억여원의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경찰이 압수한 문화재 가운데는 보물급인 '홍치6년(弘治六年) 분재기(分財記)', '도은(陶隱)문집' 이 포함돼 있었다. 홍치 6년 분재기는 재산의 상속과 분배 과정을 기록해 놓은 문서로 계유정난(癸酉靖難)에 공을 세운 문원군 류사의 부인이 1493년(성종 24년)에 쓴 것이다. 경찰은 "조선 전기의 분재기 자료 중 연대가 가장 앞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매우 큰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감정 의견이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검거된 용의자 가운데 이모(40)씨가 최근 국립민속박물관에 목판 72점을 매도하겠다는 신청을 했다는 정보를 입수해 처음 수사에 착수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지방경찰청 안태정 광역수사대장은 "문화재 밀매 사범이 공소시효를 넘겨 처벌을 피하기 위해 대학교 도서관을 장물 보관 장소로 이용한 게 적발된 케이스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들이 훔쳐 숨겨 둔 문화재가 더 있는지 수사 중이다. 이미 시중에 팔려나간 문화재는 행방을 추적해 피해자에게 돌려주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