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고졸'인데 검사역" "개봉 전날에도 공사판 돌 날랐죠"

'조연들의 전성시대'다. 지난 2일 개봉한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에선 주연이나 조연 할 것 없이 강한 존재감을 내뿜으며 화면을 긴장시킨다. 특히 주연배우 최민식과 팽팽히 맞선 낯선 얼굴의 두 조연 배우를 보고 있자면 '대체 누굴까'하는 궁금증이 든다. 조폭 소탕에 나서는 조범석 검사 역의 곽도원(38)과 조폭 보스의 오른팔 박창우 역을 맡은 김성균(32)이다. 이들의 연기를 보면 "영화는 배우들의 것이다. 캐릭터를 표현할 배우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윤 감독의 말을 실감할 수 있다.

14일 서울 삼청동에서 곽도원과 김성균을 만났다. 폭력과 권력 다툼에 찌든 남자들을 연기했지만 만나보니 장난기 넘치는 '소년'들에 가까웠다. 두 사람 다 연극판에서 잔뼈가 굵었다. 이들은 "아직 얼굴을 알아보는 관객이 없다"고 했다.

―'범죄와의 전쟁'은 270만 관객을 동원했다. 영화는 재밌게 봤나?

곽도원 "예전에도 몇몇 영화에 출연했지만 비중이 작았다. 이번 영화에서 첫 조연을 맡았다. 최민식 선배와 나란히 앉아서 영화를 봤는데 내가 화면에 등장할 때마다 '너 나왔다'며 옆구리를 찌르며 놀리더라. 내가 어떻게 나오는지도 모를 정도로 떨렸다."

김성균 "너무 긴장해서 영화 보면서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다. 마지막 장면에 주인공의 손자로 나온 아기가 내 아들이라 뿌듯하기도 했다. 당시 7개월이었다. 아들과 아버지가 함께 영화에 데뷔한 셈이다."

―어떻게 캐스팅됐나?

곽 "감독 빼고는 다 반대했다. 연출부, 제작부, 투자·배급사까지 다. 비중이 큰 역할인데 다들 내가 누군지 몰랐기 때문이다. 최민식 선배도 '나 너 반대했었다'라고 했을 정도다."

김 "난 다 찬성했다.(웃음) 기껏해야 패거리 중에서 앞장서서 쇠파이프 휘두르는 정도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역할 비중이 커서 놀랐다."

―영화 속 캐릭터와 실제 모습이 아주 다르다.

곽 "난 '고졸'인데 출세지향형 검사역을 맡았으니… 나란 캐릭터를 그대로 표현하는 게 어렵지, 나와 다른 캐릭터는 오히려 쉽다. 거리감을 두니까 다른 성격의 인물을 더 잘 형상화할 수 있다. 성균이도 여리고 예의 바른 사람이지만 폭력적인 캐릭터를 잘해냈다."

김 "270만 관객이 봤다는데, 날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 단발머리로 출연했는데 지금은 머리를 짧게 잘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영화에 출연하기 전까지는 뭐 했나?

곽 "고등학교 졸업하고서부터 계속 연극을 했다. 연극만 해서는 생계가 안 되니 아르바이트를 같이 했다. 가장 많이 한 게 막노동이고 레스토랑 서빙, 주유소 아르바이트부터 야채·과일·양말 장사까지 안 해본 게 없다."

김 "고등학교 때부터 지방에서 연극을 했고, 25세 때 서울에 올라와서도 계속 극단에 있었다. 나도 연극과 아르바이트를 같이 했다. '범죄와의 전쟁' 개봉 전날까지도 택배기사와 공사판에서 돌 나르는 일을 했다."

―그렇게까지 고생하면서 연기를 계속한 이유는 뭔가.

김 "연기가 아무리 좋아도 가정이 생기고 생활고(苦)에 직면하면 회의가 든다. 연기를 때려치우려고 할 때 '범죄와의 전쟁'에 캐스팅됐다. 그리고 이미 연기가 내 삶에 깊게 들어와서 막상 그만두려고 생각하니 겁이 났다. 다른 것을 시켜준다고 해도 못할 것 같다."

곽 "나도 연기 그만두고 제주도에 가서 정착하려는 계획까지 세운 적도 있다. 그런데 연기란 것도 중독성이 있어서 끊을 수가 없다. 잘하진 못해도 할 줄 아는 게 이것뿐이기도 하고."

―주연 욕심은 없나?

곽 "최민식·김수로 같은 주연 배우들과 일하면서 배운 게 많다. 인기 많다고, 연기 잘한다고 주연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 이 선배들은 단역들의 긴장까지 다 풀어주면서 촬영장 전체의 분위기를 만들어 나간다. 욕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김 "많이 부족한데 첫 작품에서 과분할 정도로 큰 역할을 했다. 20대 때 10년간 연극 공부를 했으니, 30대에 10년간 영화 공부를 하면 40대쯤 주연 욕심을 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