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적이되 한국적이지 않게" 의뢰인이 주문했지만…

2010년 12월, 공간디자인 회사 '보이드플래닝'에 레바논인이 보낸 이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당시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수도인 아부다비에 짓고 있던 '센트럴 마켓'에 들어갈 동양식 찻집을 디자인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센트럴 마켓은 영국의 스타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유명 주상복합건물로 최근 완공됐다. 특히 상업 공간인 '수크(souk·시장)'는 중동 재래시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해외 디자인 전문 웹진에 소개되는 등 화제가 됐다.

지난주 서울 한남동 사무실에서 만난 보이드플래닝 강신재(45), 최희영(41) 공동대표는 "의뢰인이 차(茶) 애호가라며 '동양 차를 중동에 알리고 싶다'며 연락을 해왔다"고 했다. 친분이 전혀 없던 의뢰인은 해외에 소개된 이들의 프로젝트를 보고 연락을 해왔다고 한다. 보이드플래닝은 '창동 설렁탕'으로 2005년 독일의 디자인상 '콘트락트월드 어워드'에서 호텔·레스토랑 부문 대상을 받았다. 세계적인 디자인 전문지 '프레임'에 이들이 디자인한 멀티숍 '티오도'가 소개되기도 했다.

디자인의 키워드는 '대나무'였다. 이들은 "작업해야 할 공간을 보는 순간 곧고 키 큰 대숲이 떠올랐다"고 했다. 직사각형 바닥이 45㎡(약 15평)정도로 좁은 데 비해 높이가 8m나 됐기 때문이었다. 강 대표는 "천장을 통상적 높이인 3m 정도에서 막아버리지 않고 공간의 독특한 형태를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며 "진열장 높이를 천장 부근까지 키워 수직적인 느낌을 줬다"고 했다. 사람 키 위로는 다구(茶具)를 진열하지 않지만, 칸막이에서 이어진 목재는 천장까지 곧게 뻗어 있다.

화려한 장식을 배제한 간결한 디자인도 특징이다. 강 대표는 "속이 빈 대나무처럼 되도록 미니멀(단순)하고 비어 있는 듯한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며 "수직적 공간은 자칫 위압적인 느낌을 줄 수 있어 힘을 약간 뺀 것"이라고 했다. 한쪽 벽엔 벽지 대신 가늘게 켠 대나무를 엮어 만든 발을 붙여 은은한 황색빛을 연출했다.

내부 마감에는 한지를 많이 썼다. "시판되는 벽지 대신 먹물로 염색한 한지를 벽에 바르고, 솔잎을 형상화한 그림도 한지에 인쇄해 붙였다"고 했다. 최 대표는 "벽지나 그림을 제작해 아부다비의 시공자들에게 보내 작업했다"며 "얇은 한지에 익숙하지 않은 현지 시공자들이 삐뚤삐뚤하게 붙여 버려 다시 만들어 보내기도 했다"고 했다.

이곳에서 파는 차와 다구 등은 한·중·일 3개국 상품이 대부분이다. 의뢰인의 요구는 "동양적이되, 한국적이지 않은 공간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두 디자이너는 "대나무, 한지처럼 동아시아 3국에서 친숙한 소재로 동양적인 느낌을 표현했다"고 했다. 그렇다고 '한국만의 미(美)'를 간과하지는 않았다. 조명에 한옥의 문살 무늬를 넣었다. 이들은 "마침표는 한국적인 것으로 찍고 싶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