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이완용은 왜 종묘를 욕심냈을까?

왕의 영혼, 조선의 비밀을 말하다

이상주 지음｜다음생각｜296쪽｜1만4000원

1924년 종묘에 도둑이 들었다. 덕종과 예종의 어보(御寶)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순종(1874~1926)은 침식을 잊고 수시로 "어보를 찾았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정작 책임자인 이왕직 차관 시노다와 예식과장 이항구는 효창원에 골프를 치러 다녔다. 이들의 행적을 비판하는 기사가 실리자 이항구는 "당장 쓸모있는 것도 아닌데, 그것을 잃어버렸다고 골프도 못 치느냐"고 발끈했다. 이항구는 을사오적인 이완용의 큰아들이었다. 예전 같으면 목숨을 내놓아도 모자랄 일이지만, 나라 잃은 임금 도장은 이렇게 냉대를 받았다.

서울 종로구 종로 155번지, 종로3가 지하철역에서 창경궁 쪽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종묘는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대표적 문화재다. 하지만 조선조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라는 엄숙한 분위기 때문에 그런지 경복궁이나 덕수궁처럼 관람객이 붐비는 곳은 아니다. 종묘에 얽힌 야사(野史)를 모은 이 책을 읽으면 세계적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극찬했다는 이곳을 좀 더 친근하게 느낄 것 같다.

종묘의 정전(正殿)에는 조선왕조 왕 19위와 왕후 30위, 영녕전(永寧殿)에는 정전에서 옮긴 왕 15위와 왕후 17위 및 의민황태자(세칭 영친왕)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그런데 종묘 정문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고려 공민왕 신당이 먼저 나온다. 어떻게 된 걸까. 저자는 고려 유민을 달래고 조선의 정통성을 높이기 위한 정치적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설명한다. "왕(王)씨는 공민왕이 후사가 없이 세상을 떠난 뒤 종사를 보전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혼란을 수습하고자 백성의 지지를 얻어 하늘의 뜻을 받든다." 1392년 발표한 즉위 교서에서 보듯, 태조 이성계는 조선의 건국 명분으로 공민왕 계승을 들었다. 공민왕 신당 안엔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를 함께 그린 영정과 공민왕이 그렸다고 전하는 준마도(駿馬圖)가 봉안돼 있다.

광해군의 어머니는 선조 후궁인 공빈 김씨였다. 임금의 어머니라도 후궁은 종묘에 모시기 어려웠다. 광해군은 공식적으로는 선조의 정비인 의인왕후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광해군은 생모를 왕비로 추숭하고 종묘에 모셨다. 어머니에 대한 효를 다하는 뜻도 있지만 왕권 강화와 정통성 확보라는 이유가 컸을 것이다. 후궁의 아들이라는 콤플렉스가 있었던 선조는 적자(嫡子)에게 왕위를 잇고자 하는 의욕이 강했다. 광해군이 세자로 책봉된 이후 적자인 영창대군이 태어나자 광해군의 지위는 흔들렸다. 광해군은 생모가 왕후가 되면 적통 시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조반정으로 쫓겨나면서 공빈은 다시 종묘에서 퇴출됐다. 왕위에서 밀려난 광해군의 신주도 종묘에 들어올 수 없었다. 광해군과 공빈의 묘는 경기도 남양주에 있다. 어릴 적 어머니를 여읜 광해군은 어머니 발치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했다고 한다.

종묘에는 왕과 왕후 이외 임금에게 큰 충성을 했거나 나라에 공을 세운 신하들을 같이 모셨다. 종묘에 배향(配享·위패를 모심)되는 것은 관료들에게 최고의 영광이었다. 후손에게 과거를 거치지 않고 벼슬길에 오르는 문음(門蔭), 형벌 면제 등의 특혜가 뒤따랐다. 종묘 배향공신은 애초 95명이었으나 추가, 삭제 과정을 거치면서 83명이 됐다. 태조의 배향공신은 당초 4명이었다. 하지만 태종은 3명을 더할 것을 주장해 7명이 됐다. 여기엔 태종과 맞섰던 남은까지 포함했다. 고려 태조 왕건의 배향공신이 6명이라는 사실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태조의 배향공신이 7명으로 되면서 이후 임금들의 배향공신은 7명을 넘지 못하게 됐다.

친일파 이완용도 종묘에 배향된 적이 있다. 1926년 순종이 붕어하자 이왕직의 원로 대신들이 모여 종묘에 배향할 공신 후보 9명을 추천했다. 이왕직(李王職·일제 치하에서 조선 왕실 관련 사무를 보던 기구) 장관 한창수가 이완용을 추천했다. 일본의 압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완용은 투표에서 떨어졌다. 그런데도 주무 장관 한창수는 순종 배향공신으로 이완용을 비롯한 3명을 발표했으나 원로들이 반발하자 결국 보류했다. 이후 이완용은 은근슬쩍 종묘에 배향됐다. 일제의 농간이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이완용의 신주는 종묘에서 쫓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