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회 베를린영화제] "감옥에 외롭게 있을 그들, 이 순간을 봤으면"

노장(老將)은 살아있었다. 이탈리아 거장 비토리오 타비아니(83), 파올로 타비아니(81) 형제가 만든 다큐멘터리 '시저 머스트 다이'(Caesar Must Die)가 18일(현지시각) 열린 제62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인 황금곰상을 받았다. 1954년 '불타는 밤'으로 데뷔한 타비아니 형제는 1977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빠드레 빠드로네'를 비롯, '로렌조의 밤' 등의 걸작을 내놓은 노장 감독들이다.

'시저 머스트 다이'는 이탈리아의 한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이 셰익스피어의 비극 '줄리어스 시저'를 무대에 올리는 과정을 담은 흑백 다큐멘터리다. 재소자들이 우정, 배신, 권력 등을 이야기하는 셰익스피어 희곡에 푹 빠졌다가 연극이 끝나고 나서 교도소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타비아니 형제는 로마 레비비아 교도소에서 6개월 동안 재소자들이 연극을 리허설하는 모습을 촬영했다. 이 교도소는 요한 바오로 2세 암살 미수범 등이 수감됐을 정도로 최고의 보안 수준을 유지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시상식 무대에 선 타비아니 형제는 "우리가 이곳에 있을 때 그들(재소자)은 감옥에 외롭게 있을 것이다. 그들이 이 장면을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비토리오 타비아니 감독은 "영화를 본 누군가가 집에 가서 재소자도 결국 인간이고, 인간으로 남는다고 생각하길 바란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심사위원 대상(은곰상)은 헝가리 감독 베네덱 플리고프의 '저스트 더 윈드(Just the Wind)'가 차지했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은 뒤 힘겹게 살아가는 집시여인 마리와 그 가족을 그린 영화다. 집시들이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살해당한 연쇄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실제 집시들이 영화에 출연한다. 감독상은 '바버라'(Barbara)를 연출한 독일의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이 받았다.

남우주연상(은곰상)은 니콜라이 아르셀 감독의 '로열 어페어(Royal Affair)'에서 열연한 덴마크 배우 미켈 보에 폴스라르에게, 여우주연상은 콩고 소년병 이야기를 다룬 '워 위치(War Witch)'에 출연한 14세의 콩고 소녀 레이첼 음완자에게 돌아갔다.

재일교포 양영희 감독은 '가족의 나라'로 국제예술영화관연맹상을 받았다. 귀국 사업으로 북한에 건너갔다가 25년 만에 지병을 치료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한 오빠와 일본에 남은 여동생이 재회(再會)하는 이야기다.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이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다. 양영희 감독은 부모의 영향으로 조총련계 학교에 다녔고, 세 명의 오빠는 10대 때 북한으로 건너가 지금도 거주하고 있다. 국내에도 개봉된 '디어 평양'(2005)과 '굿바이 평양'(2011)도 북한과 일본을 오고 간 그의 가족 이야기다.

한국 영화는 이번 베를린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에는 한 작품도 진출하지 못했다. 단편 경쟁부문에 김석영 감독의 '마취', 파노라마 부문에 강제규 감독의 '마이웨이'와 전규환 감독의 '바라나시', 제너레이션 부문(청소년 영화)에 이한 감독의 '완득이'가 각각 초청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