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담론과 뒤섞인 상상력, 소설의 맥을 뚫다

'2012 동인문학상' 2월 독회의 주인공은 전방위 이야기꾼 박형서(40)로 결정됐다. 8편의 단편을 묶은 그의 소설집 '핸드메이드 픽션'(문학동네)이 그 작품이다.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유종호·김화영·오정희·정과리·신경숙·김동식·김대산)는 지난주 '2012 동인문학상' 3차 심사독회를 갖고 이 작품을 올해 동인문학상 최종심 후보작으로 올렸다.

박형서의 '핸드메이드 픽션'은 자신이 이야기꾼임을 날카롭게 의식하고 있는 작가의 자의식 넘치는 소설집. 공장 기성품이 아니라 수제(手製) 예술품이라는 자부와 긍지를 이미 제목에서부터 과시한다. 호숫가 바위의 구멍에 머리를 처박고 축 늘어진 시체들의 미스터리(너와 마을의 지루하지 않은 꿈), 산골마을 도로 건설을 둘러싸고 등장한 백발노인과 애송이 청년의 혈투(나무의 죽음),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를 과학으로 증명하겠다던 문헌고증학과 연구팀의 횡액(열한시 방향으로 곱게 뻗은 구 미터 가량의 파란 점선)등 8편에 실린 작가의 상상력은 툭하면 통제장치 없이 저 멀리 안드로메다 은하계로 날아간다. 로맨스·판타지·과학소설·신화·정신분석 등 세상의 모든 담론을 분방하게 뒤섞는다. 심사위원들의 일차적 반응은 이 작가의 이야기꾼 재능에 대한 탄성이었다. "지적 재미와 오락적 요소의 겸비" "각각의 이야기마다 강렬한 아름다움" "박형서가 소설의 맥이 뚫린 것 같다" 등 칭찬 릴레이였다. 하지만 우려와 걱정도 이어졌다. 압축하면 과잉에 가까운 요설(饒說)로 치닫는 대목이 종종 엿보인다는 것이다. 한 심사위원은 "기본적으로 재미있으며, 그 재미 속에서 삶의 불가해한 역설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면서도 "간혹 아무도 수긍할 것 같지 않은 억지를 너무나 대담하게 밀고나가서 당황스럽기도 하다"고 했다. 한 심사위원은 "자기 능력에 지나치게 도취한 게 아닌가라는 의심도 있다"면서 "글이 너무 잘 써질 때, 스스로를 의심하고 다시 한 번 뒤돌아봐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애정 어린 충고를 덧붙였다.

이로써 최종심 후보작은 정영문 장편 '어떤 작위의 세계', 한강 장편 '희랍어 시간', 강영숙 소설집 '아령하는 밤', 김미월 소설집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을 포함해 5편이 됐다. 동인상 심사독회는 전년도 8월부터 해당연도 7월까지 출간된 소설집과 장편을 대상으로 매달 열린다. 심사위원회는 월간 독회를 통과한 후보작 중에서 최종 심사 진출작을 고른 뒤, 올해 10월 초 수상작 결정 독회에서 2012년도 동인문학상의 주인공을 선정한다.

소수 의견 받은 작품 2편

천명관 '나의 삼촌…' 이소룡, 한국 현대사 결합
배수아 '서울의 낮은…' 낯선 관념, 매혹적인 여행

이번 독회부터 ‘소수 의견’을 함께 싣는다. 다수 심사위원의 지지를 받지는 못했지만, 소수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던 아까운 작품들이다.

①천명관 장편 ‘나의 삼촌 브루스 리’(전2권·예담)

천명관은 이소룡을 단지 지나간 시절의 추억거리나 대중문화의 유행현상으로 다루길 거부한다. 그는 이소룡에 대한 열망과 몰입이 삶의 원리이자 구원의 방식이었던 한 인간의 삶을 그려내며, 그 과정에서 한국사회의 역사적 무의식에 도달하고자 욕망한다. 이소룡의 삶과 영화를 소설의 구성방법으로 폭넓게 원용하며, 작가의 개인적 체험과 세대적 공감을 한데 묶어 한국현대사의 흐름과 결합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펼쳐놓은 초식(招式)을 수습하지 못한 무도가의 뒷모습이라고나 할까. 작품의 후반부에 이르면 전반부에 펼쳐놓은 다양한 인물의 하중과 서사의 관성을 견디지 못하고 흐트러지는 양상을 보인다. 뜨거운 열정이 느껴지는 작품이기에 더 안타깝다.

②배수아 장편 ‘서울의 낮은 언덕들’(자음과 모음)

배수아의 소설은 침묵과 어둠 속에서 흘러나오는 이질적인 목소리를 통해 펼쳐지는 기묘한 여행을 보여준다. 그 여행은 꿈과 현실,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이 은밀하게 교차하며 진행되는 상징적 여행이다. 낯선 이미지와 관념들을 불러일으키는 언어와 상징이 매혹적이다. 소설은 순간적으로 고정되면서 이동 중인 목소리들의 현상을 우주의 모태를 찾아가는 임시 거자주들이라는 은유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 깊이 있는 소설임에도 신화적이고 샤머니즘적인 요소의 개입에 의한 희박해진 현실성 그리고 독자와의 소통의 어려움이 아쉬운 점으로 남았다.

이 외에 이번 독회에서 검토된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전수찬의 장편 ‘오래된 빛’(문학동네)은 학교 폭력을 다룬 주제의 시의성과 진정성이 돋보였지만 소설보다는 르포의 느낌을 준다는 점, 또 상황이나 주제가 또렷하게 부각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웠다는 평가였다. 김종광의 장편 ‘똥개행진곡’(뿔)은 정돈되지 못한 알레고리가 안타까웠고, 함정임의 장편 ‘내 남자의 책’은 잔혹극의 창시자 앙토냉 아르토를 통해 인생을 이야기하지만, 왜 하필 지금 아르토인가에 대한 대답이 분명하지 않았다는 지적이었다. 심사위원들은 또 글쓰는 자의 무의식과 욕망에 관한 천착이라는 점에서 세 권의 소설집에 주목했다. 다음 달 독회 집중 검토작에 올린 작품들이다. 김태용 소설집 ‘포주이야기’(문학과지성사), 한유주 소설집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문학과지성사), 황정은 소설집 ‘파씨의 입문’(창비)이 그 목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