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복지 전에 稅制부터 바꾸자] 한국은 면세자 천국, 월급쟁이 40%, 소득세 0원

게다가 소득세의 기준인 과표는 실제 연봉과 달리 각종 소득 공제를 제한 금액이어서 4000만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 근로자들도 면세자가 되거나, 면세점에 근접한 경우가 많다. 기획재정부 세제실 고위관계자는 "각종 소득공제 탓에 실소득에 비해 과표가 2000만~3000만원 낮은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했다. 실제로 연봉 3000만원으로 자녀가 2명인 외벌이 가장은 근로소득공제(1125만원), 인적공제(600만원), 연금저축(300만원, 2011년 기준)과 보험(100만원), 신용카드 등 공제 혜택을 모두 챙길 경우 연간 소득세 부담이 30만원이 안 되거나, 면세자가 된다.

세금 면제자를 양산하는 소득세법 때문에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19%대로 OECD 평균치(25%)에 크게 못 미친다. 이영 한양대 교수는 "조세부담률을 1~1.5% 늘리면 한 해 세수가 20조원 가까이 늘어난다"고 말했다. 20조원이면 여야가 쏟아낸 복지공약을 선별해 현실성 있는 대책을 절반 이상 실천할 수 있다. 그는 "비과세 감면을 줄이고, 저소득층도 세금을 조금이라도 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성현 교수는 "부자들의 세 부담을 늘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 시급한 것은 중산층의 세 부담을 조금씩이라도 늘리고 아예 세금을 안 내는 사람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민은 1 내고 10 받고, 부자는 10 내고 1 받는 '국민공감세제' 만들어야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무상복지 공약 경쟁이 쏟아지고 있다. 무상보육으로 시작된 복지 경쟁은 대학생, 군인, 아동·청소년들에게 모두 복지수당을 주는 방안이 거론되기에 이르렀다. 콧대 높던 유럽 선진국들이 나랏빚 때문에 경제위기에 몰린 것은 수입에 걸맞지 않은 수준의 복지를 고집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속가능한 복지'를 정착시키기 위해선 재원 마련 방법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회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복지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세제 개편 방법을 모색해 본다.

'넓은 세원(稅源), 낮은 세율.'

세제 개편이 화두로 오를 때마다 정부와 세제 전문가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세금은 가능한 한 많은 국민이 내도록 하고, 대신 세율은 낮게 가져가자는 뜻이다. 복지 확대 논쟁과 관련해서도 전문가들은 '지속가능한 복지 모델'을 구축하려면 전 국민이 세금을 내는 '국민 개세(皆稅) 주의' 원칙부터 재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황성현 인천대 교수(전 조세연구원장)는 "전 국민이 조금이라도 세금을 내야 정치인들이 복지정책을 내놓을 때 '그 돈이 결국 내 호주머니에서 나간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세제의 현주소는 이 같은 정도(正道)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면세자 천국, 월급쟁이 40%는 소득세 0원

2011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과세 대상 근로소득자 1517만명 중 아예 세금을 안 내는 면세자가 593만명으로 40%에 달한다. 또 한 해 소득세가 100만원도 안 되는 사람(과표 1200만원 이하)이 559만명에 이른다. 자영업자의 소득세 납부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소득이 적으면 세금을 안 내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나라는 빈곤층이 많아 그런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빈곤층 비중은 24% 내외로 면세자 비중(40%)보다 크게 떨어진다.

그러나 막상 안 내던 세금을 내라고 하면 좋아할 사람이 없다. 수십 년째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 공염불에 그치고 있는 이유다. 박형수 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재벌과 부자를 표적으로 한 '한풀이식' 증세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누가 얼마나 세금을 더 낼지에 대해 모든 계층이 승복하는 합의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새로 세금을 내는 이들이 불만을 가지지 않을 만한 패키지가 필요하다. 저소득자는 일단 1원이라도 세금을 내고 나중에 10원을 돌려받게 하고, 고소득자는 10원 내고 1원이라도 돌려받도록 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제 전문가들은 '국민 공감 세제'의 실천 방안으로 크게 두 가지를 꼽는다. 근로장려세제의 확대와 근로소득공제 등 각종 소득공제 축소가 그것이다.

먼저 근로장려세제(EITC)다. 저소득층 근로자에게 근로소득에 대한 세금을 환급해 주는 제도로, 일할수록 복지 혜택을 많이 받을 수 있게 설계돼 있다.

세제 전문가들은 저소득층 면세자를 줄여 소액의 세금이라도 내게 하면서 EITC 제도를 함께 확대해 납부한 세금의 몇 배를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한다면 저소득층이 세금을 1원 내고 10원 돌려받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EITC 제도는 1975년 미국에서 처음 만든 제도로 우리나라는 2009년부터 시행 중이다. 올해는 연소득 2500만원 이하인 근로자가 최고 200만원까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올해 EITC 수혜계층은 110만 가구로 500만을 넘긴 면세자 규모에 비해 그 숫자가 적다.

다음은 근로소득공제율 조정이다. 근로소득공제란 매달 월급을 받아 생활하는 근로소득자들을 위해 봉급의 일정액을 소득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해 주는 제도다. 근로소득공제는 원래 자영업자에게 사업 과정에서 소모되는 각종 비용을 면세해주는 데 대한 형평성 제고 차원에서 근로소득자에게도 기본 소득공제 혜택을 주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소득공제율은 급여 수준에 따라 달라지는데, 소득이 적을수록 공제율이 크다. 일례로 연봉이 2000만원인 사람은 그 중 975만원에 대해서는 아예 소득세를 안 낸다. 전문가들은 "근로소득공제는 취지상 교육비·인적공제 등 개별소득공제와 겹치는 부분이 있다. 고소득자에 대한 근로소득공제는 아예 없애고, 소득이 낮은 사람도 근로소득공제는 줄이고 부양가족공제를 더 높이는 것이 낫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근로소득공제만 줄일 경우 자영업자와 근로소득자 간 형평성 문제가 생기는 만큼, 개별 소득공제와 소득세 과표·세율도 전반적으로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기재부 세제실 고위관계자는 "세제 개혁은 이런 기본과제 해결이 우선이다. 개별 세율을 올리거나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세금을 매기는 현재의 복지재원 확보 논의는 재원 확보를 위한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