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적 단기거래 막는다지만… 투자자금 해외탈출 우려도

최근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을 중심으로 파생상품 거래세나 주식양도차익 과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세계 각국에서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헤지펀드·파생상품 규제, 은행 감독강화 등 금융개혁을 위한 여러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특히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것은 '금융거래세' 도입 여부다.

금융회사는 고위험 추구 과정에서 이익과 보상은 자기가 챙기고 손실은 공적자금을 통해 메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금융거래세 도입은 이처럼 '이익을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금융회사에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다. 주식·채권·외환 등의 거래에 세금을 부과하고 이를 통해 건전 재정 마련을 위한 세수를 확보하자는 것이다.

◇미국 야당, 금융거래세 도입 추진

미국에선 환매조건부채권(레포) 등 '초단기신용'(overnight loan) 형태로 리먼 브러더스 같은 투자은행에 자금을 제공하던 투자자들이 금융회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자 자금을 서둘러 회수해 위기가 초래됐다. 레포 거래의 핵심은 자산을 매도하되 짧은 기간 내에 되사기로 약속하는 '단기매매'에 있다. 이 때문에 금융거래세 문제는 단기 금융거래를 억제함으로써 금융시장의 취약성을 개선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과 연관돼 있다.

미국의 금융안정감시위원회는 레포 시장 개혁을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 준비하도록 했지만, 가이트너 재무장관 등은 단기 금융거래를 억제하기 위한 금융거래세 부과 등에 대해서는 이미 부정적 견해를 밝혀 온 상황이다. 하지만 지난해 말 야당인 민주당 소속 피터 드파지오 의원과 톰 하킨 의원은 2013년 예정으로 주식·채권·파생상품 거래에 0.03%의 금융거래세를 부과하는 법안을 제출한 상황이어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유럽에선 프랑스·독일 찬성, 영국은 반대

금융거래세에 대해 가장 극명한 의견대립을 보이는 곳은 유럽이다. 특히 재정 적자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에선 금융거래세를 통한 정부의 재원 조달 필요성이 겹치면서 이에 대한 찬반 국가들 간의 갈등이 심하다.

지난해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2014년부터 주식·채권 거래에 0.1% 세금을 매기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프랑스와 독일은 세금 부과에 대체로 찬성이지만 영국은 강한 반대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는 다른 국가와 관계없이 이번 8월부터 주식거래에 금융거래세를 0.1% 부과하겠다고 지난 1월 발표했다. 독일은 원칙적으로는 찬성하지만 세금 부과를 위해서는 유럽연합 차원에서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금융업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영국은 금융거래세에 대해 강력한 반대를 표명하고 있다. 영국으로선 금융거래가 위축될 뿐만 아니라 런던에 기반을 둔 금융기관이 다른 국가로 이동하는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 총리까지 나서서 금융거래세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스웨덴, 금융거래세 도입해 큰 후유증

최근 논의되는 금융거래세는 주식·채권·외환 등 모든 금융상품을 부과대상으로 한다. 주로 외환거래에 세금을 부과하여 환율 변동성을 줄이고자 하는 토빈세도 금융거래세의 한 형태로 생각할 수 있다. 토빈세는 이미 1970년대 이론적으로 제시됐지만, 실제 금융거래세 형태로 세금을 부과한 경우는 많지 않다.

금융거래세가 실제 부과된 대표적 사례는 스웨덴이 꼽힌다. 스웨덴은 1984년부터 주식매매에 0.5%의 세금을 부과했고, 1986년에는 세율을 두 배로 올렸다. 1989년부터는 채권거래에도 0.003%의 세금이 부과됐다. 그 결과 금융거래세 부과 이후 금융거래의 상당 부분이 외국으로 이전됐는데, 1986년의 경우 주식거래의 30% 정도가 해외로 이동한 것으로 추산된다. 또한 금융거래세가 폐지된 1990년까지 주식거래의 절반 이상이 런던으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거래의 감소는 더욱 심각했다. 총 거래량의 85%가 감소했고 선물 및 옵션시장은 사라질 정도였는데, 금융거래세 폐지 이후에야 대부분 금융거래가 회복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국제 금융거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영국으로서는 금융거래세 부과에 동조할 수 없는 상황이다.

◇'거래세'보다 '소득세' 추가 부과가 더 바람직

금융거래세를 활용해 투기적 거래를 줄이면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금융거래세 부과가 투기 목적의 단기거래뿐 아니라 일반적인 거래 자체를 위축시킨다는 점이다. 또 금융상품의 유동성을 떨어뜨려서 주가를 포함해서 금융상품의 가격을 낮추고 금융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을 어렵게 할 수도 있다. 따라서 금융거래세와 같이 거래 자체에 부과하는 세금은 일반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거래를 통해 자본이득 형태로 소득이 발생한 경우라면 소득에 대한 세금부과는 합리화될 수 있다. 특히 단기 거래를 통해 발생한 소득이라면 투기 수요를 감소시킨다는 측면에서도 타당성을 지닐 수 있다. 부동산에 대해서도 취득세와 등록세 형태의 거래세는 줄이지만 매매를 통해 얻은 이득에 대해서는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것과 같은 논거이다. 양도소득세도 특히 장기보유분에 대해서는 세금을 감면해 주는 것 역시 동일한 맥락이다.

◇금융회사 감독강화는 필요

'이익을 사유화하고 손실을 사회화'하는 금융회사의 행태를 교정하기 위해선 지나친 위험추구 행태를 제어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금융거래세 부과보다는 미국 금융개혁이 보여 주고 있는 금융기관 규제의 정신을 참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과도한 위험을 추구하도록 만드는 보상체계는 당국이 금지시킬 수 있고 구제금융을 지원받은 금융회사에 대해선 책임을 강화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미국 록그룹 '이글스'가 부른 노래 '호텔 캘리포니아(Hotel California)'엔 "당신은 언제든지 방을 뺄 수는 있지만 떠날 수는 없어요"(You can check out any time you like. But you can never leave)라는 가사가 나온다. 여기서 유래된 소위 '호텔 캘리포니아 규정'(Hotel California rule)에 따르면, 일단 구제금융을 제공받은 은행지주회사는 자회사 처분 등으로 연준의 감독대상인 은행지주회사 신분을 벗어나도 연준의 엄격한 감독대상으로 계속 지정되도록 하는 식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적절한 규율 없는 금융시장은 정글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금융시장의 규율을 회복하기 위한 글로벌 금융개혁이 진행 중이지만, 각국은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규제를 제안하고 있다. 다양한 방식의 규제가 제안될 수는 있지만, 제도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시장거래 자체를 크게 왜곡하거나 축소시키지는 않아야 한다는 원칙은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