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복지 전에 稅制부터 바꾸자] 고소득층에 혜택 큰 비과세·감면 축소해야

올 초 인천광역시의 10개 기초자치단체장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직원 월급조차 못 줄 정도로 재정난이 심각하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지방세 비과세·감면 비율 축소', '복지사업 정부 지원' 등을 요구 사항으로 내걸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1995년 63.5%에서 작년 51.9%로 떨어졌다. 인천시 지자체 평균은 37%로 이보다 더 낮았다.

각종 비과세·감면 정책은 재정을 악화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작년 지방세의 비과세·감면 규모는 2006년에 비해 약 73% 증가한 14조원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지방세 징수액 대비 비과세·감면 규모를 나타내는 비과세·감면율은 작년 22%로 2005년에 비해 10%포인트 정도 상승했다.

국세도 마찬가지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작년 국세 감면 규모는 30조6000억원으로 2008년의 28조8000억원에 비해 1조8000억원(6.4%) 증가했다. 올해는 32조원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비과세·감면 제도 숫자도 올해 201개로 작년(177개)보다 24개 늘어날 것으로 재정부는 보고 있다.

◇실효성 낮은 비과세·감면 제도

박재완 재정부 장관은 최근 "실효성이 낮은 비과세·감면 제도를 정비해(줄여) 나가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신용카드 세액 공제의 경우 자영업자 등의 탈세 방지를 위해 소득을 양성화한다는 차원에서 도입됐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신용카드 사용액이 크게 늘어 정책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에 신용카드 공제 혜택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신용카드 세액공제 규모는 2010년 1조2325억원에서 작년 1조4011억원으로 1년 사이에만 2000억원 가까이 늘었다.

기업이 설비투자를 할 경우 투자금의 일정 비율로 세액을 공제해주는 임시투자세액공제(임투공제)는 1982년 경기 안정화를 이유로 한시적으로 도입됐다. 그러나 세금을 감면해주는 것에 비해 투자 활성화 효과는 미미하므로 폐지해야 한다는 지적이 반복적으로 제기돼 왔지만 기업들의 반대로 30년간 25차례 개정되며 상시제도처럼 운영됐다. 임투공제 규모는 2010년 1조7770억원에서 작년 2조7331억원으로 54% 증가했다.

한편에선 비과세·감면 축소에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연구·개발(R&D)비용 세액공제 같은 경우 국가의 발전에 필요하기 때문에 함부로 줄여선 안된다는 것이다. 김완석 서울시립대 교수는 "R&D비용 세액 공제는 늘리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현행 유지는 해야 한다"며 "공제를 해주되 실질적으로 기술 혁신에 기여했는지 여부를 잘 따질 수 있는 시스템을 보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논란이 된 주식양도차익 과세 추진도 조심스러운 접근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미 존재하는 증권 거래세를 고려할 때 중복 과세 논란이 생길 수 있고, 상당수 개인 투자자들이 주식 투자에서 손실을 보고 있는 만큼 세수 효과도 별로 크지 않을 거라는 이유에서다.

◇비과세 축소하면 고소득층 더 부담

국민들 입장에선 비과세·감면 제도를 없애면 당장 손해본다는 선입견 때문에 반대부터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비과세와 감면으로 받는 혜택은 저소득층보다 고소득층이 훨씬 많다. 근로소득 1000만원 이하인 773만명이 받는 혜택은 1인당 17만5000원에 불과한 반면, 1억원을 초과하는 11만2000명은 1인당 770만원의 혜택을 받는다.

따라서 비과세·감면을 줄이면 저소득층의 세금 부담보다 고소득층의 세금 부담이 더 늘어나는 효과가 난다. 이렇게 늘어난 세금을 복지에 쓰면 부의 형평성은 더 높아진다.

전문가들은 비과세·감면 제도를 축소하는 것은 '넓은 세원·낮은 세율' 원칙에도 부합한다고 말한다. 전체 근로소득자의 39%가 소득세를 내지 않는 불평등한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뜻이다. 고영선 KDI 연구본부장은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부유한 사람은 부유한 대로 세금을 내 복지를 실현해가는 게 사회통합의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표 의식한 정치권이 제일 큰 걸림돌

재정부는 올 초 "2012년에 일몰시한이 도래하는 비과세·감면 제도 총 90개 중 목적을 달성해 정책 효과가 미미한 제도를 폐지 또는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도 최근 임시투자세액공제 축소 등으로 2조원의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방안이 나왔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이 같은 방안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이 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치권이 표를 의식해 시한이 만료되는 비과세·감면제도 대부분을 연장하는 마당에 비과세·감면을 축소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해에도 신용카드 공제 일몰기한이 지났지만, 폐지 반대 여론이 일어나면서 폐기하지 못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