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든 진료 가능한 'U헬스케어'… 한국은 규제 묶여 제자리

#1. 지난해 서울의 강남 세브란스병원 해외진료센터의 컴퓨터 모니터에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사는 환자가 등장했다. 뇌종양으로 진단받은 보리스 그레고리비치(65)씨는 현지 한국관광공사 지사에 설치된 화상 통화 시스템을 통해 한국의 의료진과 진료를 봤다. 그는 방광암이 뇌로 전이된 상태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서울의 의료진은 카메라로 의식이 처지고 구토 증세를 겪는 그의 상태를 진찰하고, 의료영상 전송 프로그램으로 그의 뇌 MRI를 꼼꼼히 살폈다. 그 결과 방광암 뇌전이가 아니라 단순 뇌종양이라는 판단이 나왔다. 이에 그는 한국에 와서 방사선 치료를 받고 증세가 호전됐다.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간 그는 정기적인 원격 진료를 통해 '한·러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

#2. 당뇨병을 앓는 가정주부 김모(55·서울 서초구)씨는 서울 성모병원에서 운영하는 당뇨병 홈케어 프로그램으로 1년째 집에서 혈당 관리를 받고 있다. 매일 아침 휴대용 혈당 측정기로 손수 잰 혈당치는 가정용 헬스케어 단말기에 자동 저장된다. 전날 먹은 식사의 종류와 양, 운동량을 항목에 맞춰 꾹꾹 눌러 입력하면, 모든 기록이 병원으로 전송된다. 이를 병원 진료팀이 보고 혈당이 높다고 판단하면, 휴대폰 문자 서비스로 '지령'을 내린다. '오늘 음식 칼로리를 얼마로 줄여라' '오전에 30분을 걸어라' 등 혈당 수치에 따른 실천 요법이 지시된다. 반대로 저(低)혈당 낌새가 있을 때는 응급조처도 내려진다. 이런 과정을 통해 김씨 혈당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IT 기술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든 공간과 시간을 넘어 건강과 질병을 관리하는 '유비쿼터스 헬스케어'가 가능해지고 있다. 이른바 '유(U)헬스케어'가 생활공간에 파고들면서 병원에 가야만 진료와 치료를 받는 기존 의료의 개념을 바꾸는 것이다. 부정맥 환자가 직장에서 휴대폰을 이용해 심전도를 체크하고, 고혈압 환자가 집에서 병원과 연결된 혈압·혈당·체온 측정기로 혈압관리를 받는다. 코골이 환자가 스마트폰 녹음 기능을 이용해 잠을 자면서 수면 무호흡증이 얼마나 나오는지 파악할 수 있는 시대다. 서울대 의대 시스템 바이오정보의학센터 김주한 소장은 "지금까지 질병 진단과 치료가 환자가 병원에 찾아온 그때의 정지된 상태를 기준으로 했다면 이제는 유헬스케어로 집에서 질병 발생 이전 단계에 관리와 처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 유헬스케어는 만성질환 관리에 톡톡히 효과를 내고 있다. 연세대 의대 내분비내과 안철우 교수팀이 당뇨병 환자 35명을 홈 헬스케어 시스템으로 혈당 관리를 한 결과, 12주 만에 환자의 평균 공복 혈당이 159(mg/dl)에서 132로, 17% 떨어졌다. 당뇨병 공복 혈당 기준은 126 이상이다. 이런 서비스를 받지 않은 비슷한 나이와 체중의 환자에서는 별 차도가 없었다.

가톨릭의대 유헬스사업단 윤건호 교수는 "만성질환이 폭증하는 고령사회에서는 유헬스케어가 질병의 악화를 효율적으로 막고, 의료비를 절감하는 최대 무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거의 모든 유헬스케어 서비스는 각종 규제에 묶여 5~6년째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IT 강국 코리아'를 무색해하는 상황이다. 만약 의료진이 국내 다른 지역의 환자를 '러시아 원격 진료 케이스'처럼 진찰하고 진료비를 받으면 불법이다. 환자가 의사를 직접 대면(對面)한 진료만 의료법상 인정된다. 환자는 꼭 의료기관을 방문해야만 처방전을 받을 수 있다. 의료기관이 없는 섬이나 격오지, 교도소 환자 등을 대상으로 일부 원격 진료가 이뤄지고 있으나 시범사업 형태로 운영될 뿐이다. 이조차도 원격 진료받는 환자 옆에 반드시 의사나 간호사가 붙어 있어야 허용된다.

환자 의무 기록의 전산시스템도 통합이 안 되어 각종 질병 검사와 진료 기록은 의료기관 간에 서로 교환이 안 된다. 환자들이 병원을 옮길 때마다 일일이 소견서를 떼거나 CT·MRI 영상을 CD에 담아가야 하는 불편을 겪는다. 이 과정에서 환자들은 중복 검사를 받기 일쑤고 치료의 연속성도 깨진다. 응급 환자가 평소 다니지 않던 병원에 실려 갔을 때는 예전 진료 정보를 구할 수 없어 신속한 처치가 불가능할 때도 잦다.

지난 5년 동안 원격 진료나 유헬스케어 활성화 법안들이 국회에서 수차례 논의됐으나 개원의 중심으로 이뤄진 의사협회가 '시기상조'와 '진료 혼란' '외래 환자 감소' 등의 이유로, 일부 야당 의원들은 민간 보험회사와 통신회사가 관여할 수 있어 '의료 민영화'라는 이유로 반대하여 개정안이 번번이 무산됐다.

부산대 법대 주지홍 교수는 "선진국들은 법적 규제를 풀고 유헬스케어 시대로 우리만 제자리"라며 "우선은 만성질환 정기 진료와 건강관리 서비스 분야부터라도 활성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유헬스케어(U Healthcare)

유비쿼터스(Ubiquitous) 헬스케어 시스템을 일컫는 용어다. 유비쿼터스는 ‘언제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뜻의 라틴어로, 사람들이 장소와 시간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정보통신 환경을 말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사람의 생체 지표와 질병 위험을 체크하고 건강관리를 하는 시스템이 유헬스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