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강세에 항공·해운株 휘청

이란과 서방 국가 간 고조되는 긴장이 국내 주식시장에 복병(伏兵)으로 등장했다. 국제 유가가 상승하며 항공·운송주가 급락했고, 유가 급등이 장기적으로 증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유가가 급등하면 원재료 비용 부담이 늘어나는 업체 주가에 좋지 않고,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가 가중되며 주식 시장 전반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유가 상승에 항공·해운주 급락

21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각각 6.3%, 4.3% 급락했다. 전날 국제 상품 시장에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가 9개월 만의 최고치로 치솟고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하자 항공사의 실적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며 주가를 끌어내린 것이다. 항공사의 실적은 원유 가격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주가도 유가 등락에 영향을 받는다.

최근 운임 인상 기대로 상승했던 해운주도 하락했다. 한진해운이 1.7% 내렸고, 대한해운과 STX팬오션도 각각 2.3%, 3.4%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원유 가격이 계속 상승하면 이들 기업의 비용 부담이 늘어나며 실적이 악화되고 주가도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가 상승 이어지면 증시 발목

유가가 예상보다 큰 폭으로 상승하며 전통적으로 유가 상승 수혜주로 꼽히는 정유주도 다소 부담스러운 모습이다.

유가가 작년 여름 이후 최고가를 기록한 가운데 이날 SK이노베이션은 소폭 오르는 데 그쳤고, S-Oil·GS는 약보합세에서 거래를 마쳤다.

전문가들은 유가가 상승하면 정유 업체의 정제 마진이 커지며 주가에도 호재로 작용하지만, 유가가 계속 상승하면 결국 정유 업체의 비용도 늘어나고 수요가 위축될 수 있기 때문에 정유주에 좋지 않다고 설명한다.

유가 강세가 장기화될 경우 피해는 일부 업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원유 가격 상승이 물가를 자극하고,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 각국의 경기 부양 공조가 깨지거나 돈줄을 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화증권의 최광혁 연구원은 "최근 세계 증시가 상승한 것은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라기보다 풍부한 자금이 주식 시장으로 유입된 덕분인데, 유가 상승이 계속되면 주가 조정의 빌미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유주보다 종합에너지 관련주 추천

문제는 유가 상승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JP모건은 이날 "세계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며 원유 수요가 늘었고, 주요 원유 공급국 이란과 나이지리아의 정세가 불안해지며 공급 감소에 대한 우려가 유가에 반영되고 있다"며 WTI 가격이 올해 110달러, 내년 120달러를 넘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유가 상승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종합에너지 기업이나 원유 펀드에 투자하는 대안 투자법에 주목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동부증권의 유경하 연구원은 유가 등락폭이 클 때 유가 움직임에 덜 민감한 종합에너지 관련주가 상승할 수 있다며 삼성물산과 LG상사를 관심주로 꼽았다.

자산의 일부를 유가 상승에 직접 베팅하는 것도 대안 투자법으로 꼽힌다.

유가 상승을 예측한다면 원유 펀드에 투자할 수도 있다. 삼성자산운용과 한국투신운용은 각각 '삼성WTI원유특별자산투자신탁'과 '한국투자WTI원유특별자산자투자신탁'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원유 가격 움직임을 따라 움직이는 미래에셋맵스 'TIGER원유선물ETF(상장지수펀드)'도 현재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돼 있다.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원유 펀드와 원유 ETF는 최근 6개월 동안 20% 넘는 수익률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