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남북, 음악으로 화합 첫걸음"

지휘자 정명훈이 북한 은하수 관현악단 70여명을 초청해 다음 달 14일 프랑스 파리에서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합동 공연을 갖는다.

정씨는 21일 서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평생 남북 음악가의 만남을 기다렸지만 얼어붙은 남북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서 우선 프랑스에서 한국 지휘자와 북한 악단, 프랑스 악단의 합동 연주회를 열기로 했다"고 말했다. 합동 콘서트에서는 정씨 지휘로 브람스의 교향곡 1번 등을 연주하기로 했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2009년 창단된 은하수 관현악단은 100여명의 가수와 연주자로 구성됐으며, 해외 유학파 출신 단원들이 북한 민요와 선전가요 등을 서구식 창법으로 편곡해 부르는 등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작년 7월 이 악단 공연을 관람하고 "모든 예술 단체들이 따라 배워야 할 본보기"라고 격찬했다.

정씨는 서울시향 예술감독과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을 겸하고 있다. 북한 악단 초청 경비는 라디오 프랑스가 맡는다. 정씨는 지난 19일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조선민족음악연구소 관계자를 만났다.

작년 9월 방북(訪北)했던 정씨는 그해 연말 남북 교향악단 합동 공연을 서울과 평양에서 열기로 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프랑스로 무대를 옮겨 한국 지휘자와 북한 악단의 만남이라는 우회로를 택했다고 한다.

이날 회견에서 정씨는 "이번 연주회는 첫걸음이자 1단계일 뿐"이라며 남북 음악 교류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정씨가 구상하고 있는 일정도 뚜렷하다. 그는 오는 6월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열리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회에도 피아니스트 조성진 등 한국의 젊은 연주자뿐 아니라 북한의 독주자를 함께 초청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7~8월에는 한·중·일 단원들로 구성된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아시아 순회공연에 북한 단원들을 초청하고, 오는 12월에는 서울시향과 북한 교향악단이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함께 연주하는 공연을 재추진한다는 일정을 제시했다.

작년 방북 당시 북한 국립교향악단·은하수관현악단과 리허설을 가졌던 정씨는 "북한이 클래식 음악에 문호를 개방한 건 비교적 근래의 일로 아직 시작 단계이지만, 단원들의 기술적인 수준은 무척 뛰어난 편"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