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와 함께한 41년… "오래된 부품도 다 있죠"

서울 명동 옛 코스모스백화점이 바뀐 '눈스퀘어'에서 중국대사관 쪽으로 가는 작은 뒷골목을 걷다 보면 손수레 좌판 형태로 생긴 시계수리점을 볼 수 있다. 간판은 없지만 이곳 이름은 '진영사'. 사장은 양원영(63)씨다. 1971년부터 장사를 했으니 올해로 41년째 명동을 지키고 있다.

처음에는 지금은 도로로 변한 '달러골목'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1977년 도시 계획에 따라 '달러골목'이 없어지면서 뒤로 밀려 중국대사관 앞으로 옮겼다. "10m밖에 안 되는 골목에서 아줌마들이 쭈그려 앉아 달러를 바꿔주고 미군 PX에서 나온 물건과 밀수품이 넘치는 휘황찬란한 암시장이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암달러상은 거의 자취를 감췄지만, 아직도 이 일대에서는 달러를 바꿔준다는 할머니들이 드문드문 눈에 띈다.

양씨 부모 고향은 황해도 사리원이다. 그는 6·25전쟁 때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모와 함께 서울로 올라와 해방촌에 터전을 마련했다. 양씨는 제대 후 을지로 입구 한국전력에서 배관기술직으로 일하다 장사에 눈을 돌렸다.

그가 일했던 한국전력 서울본부 건물은 등록문화재 1호로 1928년 준공한 본격적인 근대 사무용 빌딩. 최초로 엘리베이터 2대가 도입된 바 있다. 양씨는 종로 YMCA 안에 있는 학원에서 시계수리 기술을 배웠다고 했다. 미도파(현 롯데영프라자) 맞은편에서는 금은방이 많았고, 그 사이 군데군데 시계방이 끼어 있었다.

노점으로 시작해 40년 넘게 노점을 고수하는 그는 30㎝도 안 되는 작업대에 앉아 돋보기를 끼고 시계를 만지작거리며 고쳐준다. 시계를 오래 차는 사람들은 동네 시계방에서 못 고치거나 부품이 없으면 이곳을 찾는다. 덕분에 단골이 많다.

40년 동안 명동은 숨 가쁘게 변했다. 1970년대 150여개에 이르던 양장점을 중심으로 패션 1번지로 날리던 명성은 이후 술집, 다방, 서점, 음반가게 등 문화 메카로 바뀌었다가, 이후에는 관광 중심지로 옷을 갈아입었다. 지금은 한식집(256개)이 가장 많고, 다음이 의류(142개), 다방·커피전문점(94개), 마사지숍(83개), 화장품가게(74개), 미용실(60개) 등 순이다.

그의 눈에 비친 명동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외형은 많이 달라졌지만 화려한 건 마찬가지"라고 했다. 명동은 조선시대 서울 행정구역 이름인 남부 명례방(明禮坊)에서 이름이 연유했다. 서울의 허파이자 대한민국 1번지라는 별칭에 걸맞게 증권거래소(경성주식현물시장)가 있었고, 예술인이 모이던 '동방살롱'이 흥청거렸다.

이 유적들은 사라졌지만, 아직 역사의 흔적은 곳곳에 숨어 있다. 외환은행 본점 맞은편에 있는 오양빌딩(1962년 준공)은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했고, 1936년 준공한 바로크 양식 건물 명동예술극장은 건재하다.

명동 중앙로에 있는 작은 구멍가게 '명동상회'는 3.3㎡(1평) 남짓한 구석에서 담배와 라면, 음료수, 과자 등을 파는데 역사가 50년이다. 1972년 카페 '까뮈'로 출발, 지금의 '카페 가무'로 이어지는 이 커피집은 유신 시대 외래어 추방 캠페인 때문에 받침을 하나씩 빼 가무로 개명(改名)한 사연을 지니고 있다.

양씨와 이웃들이 기억하는 명동의 과거와 현재는 서울역사박물관이 펴낸 보고서 '명동'에 꼼꼼하게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