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또 다른 나] 천주교 典禮성가 만드는 공학도 박해동(30)씨

지난해 12월 말, 학교 실험실에 있는데 전화가 한 통 걸려왔습니다. 통화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세 단어는 또렷하게 들렸어요. '주교회의' '축하' '하늘의 영원한 여왕'. 순간 잘못 들은 게 아닌가 반신반의하며 되물었습니다. "'하늘의 영원한 여왕' 맞나요?" '하늘의 영원한 여왕'은 제가 작곡한 천주교 전례(典禮·미사)용 성가(聖歌)의 이름입니다. 2015년 새로 발간될 전례성가집에 실릴 창작성가 공모에 제가 쓴 곡이 당선됐다는 사실을 알리는 전화였죠. 신부, 수녀, 교수가 포함된 수상자 네 명 중 음악 비전공자는 저 하나였습니다.

저는 공학도입니다. 서울대 공대 재료공학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어요. 지금은 군 복무 대체 전문연구요원으로 일하는데, 일터 역시 학교 실험실입니다. 아침 9시 이전에 출근해서 종일 실험실에 박혀 연구에 매진하는 일과죠. 공식 퇴근 시간은 저녁 8시이지만 밀린 일을 하다 보면 밤 10시 넘어 퇴근하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현재 진행 중인 연구는 '복합재료' 분야입니다. 금속 재료와 플라스틱 재료가 있을 때, 둘을 섞어서 장점만 추출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라고 생각하시면 쉬울 겁니다.

예전엔 버스 기사의 난폭운전이나 길거리에 불법 주·정차된 차량 등 일상의 사소한 어긋남에도 화가 치밀곤 했는데, 작곡을 하면서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됐습니다. 전례성가곡을 쓰려면 미사의 본질을 파악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미사라는 의식이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역할로 구성돼 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미사에서 각자의 역할을 맡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는 것처럼, 삶에서도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는 거겠지요. 그걸 깨달은 후부턴 마음에 안 드는 사람, 도리에 어긋난 행동을 보아도 '그럴 수 있겠거니' 웃고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미사 의식에 음악을 통해 아름다움을 더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곡을 써온 지가 어느덧 10년입니다. 좋아서 했을 뿐인데 큰 상까지 받게 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공학도로서의 제 본업인 연구도 제가 진정으로 좋아서 몰두한다면, 저도 모르는 새 그 과정의 하나로 '상(賞)'이 주어지지는 않을까요?

 

주중에는 실험실에 파묻히지만, 주말엔 음악에 푹 파묻힙니다. 매주 일요일엔 서울 관악구 낙성대동 성당의 저녁 9시 미사에서 청년 성가대를 지휘합니다. 오전 근무만 하는 토요일 오후엔 집에서 성가 작곡에 몰두하지요. 요즘은 미사의 화답송(頌)에 곡을 붙여 매주 한 곡씩 성당에 넘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작곡한 성가가 130여곡, 가사까지 직접 쓴 곡보다는 이미 있는 기도문에 곡을 붙인 것이 대부분입니다.

제가 천주교 성가 작곡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였어요. 개신교에는 신도들이 다 함께 신나게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많은데, 가톨릭 교회엔 부르기 쉬운 성가가 많지 않은 게 안타까웠죠. 서울 명동성당 청년성가대에서 활동하던 2002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작곡을 하게 됐어요. 같은 성가대 소속 형이 쓴 기타곡을 합창곡으로 편곡한 것이 계기가 됐지요. 그 곡으로 창작성가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그 덕에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고등학교 땐 음악책을 보며 독학으로 화성법을 공부했고, 대학 입학 후인 2005년엔 학교에서 음대 수업을 들으면서 화성법과 대위법을 본격적으로 배웠습니다. 그 영향인지 2005년엔 직접 작사·작곡한 곡으로 창작성가 경연대회 우수상을 받았고, 그 다음해엔 대상까지 받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2007년에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잠시 작곡을 쉬었어요. 대학원에 적응하느라 바빴고 작곡을 해야 할 동기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다가 2010년에 6개월간 영국 글래스고대학에 파견근무를 간 것이 다시 곡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 주 동안 연구를 하고 금요일 오후엔 담당교수와 서툰 영어로 토론을 한 뒤에 집으로 돌아오면 맥이 쭉 빠졌습니다. 친구도 없고, 딱히 할 일도 없는 상황이라 '다시 곡을 써 보자'는 생각이 절로 들었지요. 그 6개월간 40곡을 작곡했습니다. 2010년 8월 귀국했는데, 마침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전례용 성가 창작 공모를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좋은 기회다' 싶어 영국에서 쓴 40곡에다 출국 전과 귀국 후에 썼던 곡을 합쳐 모두 94곡을 제출했어요. 그중 '하늘의 영원한 여왕'이 이번에 상을 받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