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빚 5년새 300조원 늘어

가계 대출이 사상 처음으로 900조원(2011년 말 기준)을 돌파했다. 우리나라 정부 예산(325조원)의 3년치에 해당하는 액수다.

2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1년 4분기 가계 신용'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가계 신용 잔액은 전 분기에 비해 22조2765억원 늘어난 912조8810억원에 이르렀다.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7.8%로 3분기(8.7%)에 비해 약간 둔화됐지만 증가액은 2010년 4분기(28조원)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계 부채는 2006년 이후 5년간 연평균 10% 이상씩 증가하며 300조원 넘게 늘어났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 은행 대출 규제 강화 이후 비(非)은행권 대출이 급증하는 '풍선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4분기 중 은행 가계 대출은 6조2300억원 증가한 반면 비은행권 대출은 7조8600억원 증가했다. 은행권보다 대출 이자가 평균 2.5배 비싼 2금융권의 대출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서민층의 빚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위험 징후는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집안 살림의 '최후의 보루'인 적금과 보험을 깨는 서민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중도 해지 적금 계좌 수는 2010년 12월 5만7922개에서 올 1월 9만6698개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최근 들어 매달 50만명이 2개월 이상 보험료를 내지 못해 보험을 해약 당하거나 자발적으로 계약을 해지하고 있다. 김동엽 미래에셋 은퇴교육센터장은 "서민들이 형편이 어려워지면 적금→보험→교육비 순으로 지출을 줄이는 경향이 있는데 바로 지금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가계 부채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를 골병들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금융연구원 이규복 연구원은 "대외 여건이 안 좋은 상황에서 가계의 채무 부담 증가는 '소비 감소→경기 위축→소득 감소'라는 악순환을 유발하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