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복지 전에 稅制부터 바꾸자] 금융소득 있는데 세금은 없는 '구멍' 곳곳에

"누더기도 이런 누더기가 없다."

우리나라 금융과세 체계에 대해 한 조세 전문가가 내린 촌평이다.

근로·사업소득과 부동산 양도소득 부분은 비교적 과세 체계가 잘 짜여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하지만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 체계는 곳곳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이로 인해 소득을 많이 올리면서도 세금을 별로 내지 않는 자산가들이 많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조세행정의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것이다. 최근 금융과세를 둘러싼 여러 논의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현재와 같은 금융과세 체계를 언제까지나 유지시키기는 어려우며, 개편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금융소득 비과세혜택 줄여 근로소득과세와 형평성 맞춰야"

조세 전문가들이 금융과세 체계에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것은 비(非)과세 혜택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이다. 상장주식 양도차익, 주식형펀드, 선물·옵션 등 파생상품 수익 등이 대표적이다. 조세연구원에 따르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상장주식 양도차익이 비과세 되는 나라는 한국과 멕시코, 그리스 등 6개국에 불과하다. 주식 양도가 비과세 되다 보니, 주식형펀드도 주식 양도 차익에서 발생하는 수익에 대해서는 비과세되고 있다. 선물·옵션 등 파생금융상품은 사정이 더하다. 주식은 주식거래세라도 내지만 선물·옵션에 대해서는 거래세조차 내지 않는다.

그간 정부가 이 같은 과세 체계를 유지해 온 것은 자본시장 육성을 위해서였다. 주식 거래를 활성화해 자본시장이 커질 수 있도록 투자자들에게 비과세 혜택을 준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이 지나치게 오래 유지되면서 자본시장이 기형적으로 발달한 측면이 많다. 선물·옵션 등 파생상품 시장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파생상품 거래량은 38억1900만건(계약 기준)으로 세계 전체 거래량의 27%를 차지하며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이에 따라 금융소득에 대한 비과세 혜택을 줄이는 방향으로 과세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전병목 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근로소득 과세 등과 비교해 형평성에 맞게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금융소득 과세 개편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획재정부는 올 초 조직 개편을 통해 금융세제팀을 신설했다. 문제는 개편 시기다. 글로벌 재정위기로 금융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과세는 시장에 큰 혼란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의 경우 스웨덴은 1984년 금융거래세를, 대만은 1989년 주식양도차익과세를 각각 도입했다가 자금이탈 등의 문제가 발생하자 철회한 바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거래 위축 등 부작용을 고려해 점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회사 아닌 소비자 관점에서 조세체계 다시 만들어야"

금융 과세와 관련해 앞으로 가장 뜨거운 감자는 연금소득 관련 세금제도 개편이 될 전망이다. 기재부는 올해 세제 개편을 준비하면서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초점은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국민의 노후 생활자금 마련을 위해 연금 가입률을 대폭 높이는 데 맞춰져 있다.

우선 퇴직금을 연금 형태로 받으면 일시금으로 받을 때보다 세(稅) 부담을 크게 낮춰 줄 계획이다. 정부는 지난해 이런 방안을 추진했지만, 결과적으로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을 때 세 부담이 급격히 올라가는 부작용이 예상되자 시행을 미뤘다. 기재부 관계자는 "퇴직자들의 사정을 고려해 제도 도입을 잠시 보류한 것"이라며 "시행한다는 방침엔 변화가 없고 올해 세제 개편을 통해 효율적인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재부는 이와 함께 개인연금 가입률을 높이는 방안도 연구하고 있다. 현재 개인연금은 소득공제 혜택을 주는 상품과 10년 이상 가입을 유지할 경우 비과세 혜택을 주는 상품으로 양분돼 있다. 정부는 상품별로 소득공제와 비과세를 중복적으로 인정해 주거나 각각의 혜택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조세 전문가들은 중산층 이하 저소득층의 연금 가입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상태로는 자칫 연금 가입 여유가 많은 상위층에 혜택이 집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금융소득이 연 4000만원을 넘어 많은 세금을 내야 할 금융자산가들이 연금 상품에 대거 가입하면서 세금을 회피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소득에 대해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소득 기준선을 금융소득 합계 4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내리자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는데, 이 또한 정부가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만하다는 의견이 많다.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현재 체제가 유지되면 이자소득이 줄어들어 과세 대상자가 감소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KDI(한국개발연구원) 관계자는 "경제 상황과 금융시장 흐름 변화에 맞춰 금융과세 체계를 계속 개편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병목 연구위원은 "정부는 그간 금융회사와 금융시장의 시각에서 금융과세 체계를 운영해 왔는데 이제는 소비자 관점에서 조세 체계를 다시 짜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