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불신탓… 조정 신청 2년새 5배로 급증

서울의 빌라 아래 위층에 사는 박모씨와 황모(여)씨는 물 새는 베란다 때문에 6년을 서로 원수처럼 살았다. 2010년엔 박씨가 3100만원을 내놓으라며 소송도 냈다. 1년 넘는 송사(訟事) 끝에 1심에서 황씨가 이겼다. 법원은 "물 새는 원인이 황씨 집 때문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분을 못 이긴 박씨는 1심 법원이 자기주장을 무시했다며 2심에 항소했다. 재판에선 '황씨 집 베란다에 물을 채워놓고 48시간 지켜보면서 실험해 보자'고 우기기도 했다. 난감해진 재판부는 사건을 서울조정센터에 맡겼다. 판사 출신인 황덕남(55) 조정위원은 전문위원인 건축사의 도움을 받아 '지은 지 30년 된 빌라에선 다양한 이유로 물이 샐 수 있다'는 과학적 분석 결과를 박씨와 황씨에게 건네면서 서로 조금씩 양보하자고 설득했다.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는 설명에 두 사람은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아래 위층 이웃의 '7년 전쟁'은 조정시작 한 달 만에 베란다 수리비용 부담을 나눠서 지는 것으로 끝났다.

판결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면서 이해 당사자들 간의 타협을 통한 조정(調停)으로 분쟁을 해결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본격적인 재판에 들어가기 전에 당사자들의 합의를 유도하는 '사전 조정'을 담당하는 조정센터가 2009년 서울·부산에 이어 작년 대구·대전·광주에도 설립되면서 2009년 2400여건이던 조정접수 건수가 지난해 1만500여건으로 급증했다. 이 가운데 40%가량이 조정이 성사돼 재판까지 가지 않고 끝났다.

재판에서 조정으로 분쟁이 해결되는 사례도 계속 늘고 있다. 법원 합의부가 다루는 민사사건에서 판결 대비 조정으로 끝나는 사건 비율은 2006년 12.7%에서 2010년 17%로 늘었다. 행정처분 등을 대상으로 한 행정소송도 조정을 통해 소송을 취하한 건수가 2010년 1150여건으로 5년 만에 2배 늘었다.

조정이 늘어나는 이유는 정식 재판보다 비용과 시간 절약을 할 수 있다는 점 외에도 이해당사자들이 재판에 비해 의견을 충분히 개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는 조정이 활성화되면 재판에 대한 불신이나 소송 폭주 현상도 완화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진 쪽은 불만일 수밖에 없는 '승자독식' 구조인 판결 대신 당사자들 간 타협으로 이뤄지는 조정이 늘어나면 재판에 대한 불신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울조정센터에서 2010년 5월부터 1년간 조정이 결렬된 247건 가운데 91건은 이후 재판에서 다시 조정·화해가 성립돼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