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가르쳐 미안하다" 치매 어머니가 남긴 말에 50대 과일 장수 아저씨는 뒤늦게 펜을 들었다

홀로된 어머니가 별안간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치매였다. 증세가 날로 심해져 6남매가 쩔쩔맸다. 과일 장사 하는 다섯째가 "내가 모시겠다"고 손을 들었다.

그는 1t 트럭에 치매 어머니를 태운 채 의정부·남양주 일대를 돌며 "사과가 왔어요, 꿀사과"를 외쳤다. 이 동네 저 동네 돌다 양지바른 강둑에 모자(母子)가 나란히 앉아 김밥을 먹고 햇볕을 쬈다. 어머니는 아무 데서나 훌훌 바지를 내리고 용변을 봤다. 그때마다 아들이 급히 달려가 종이 상자로 가려 드렸다. 어머니 정신이 늘 혼미한 건 아니었다. 어느 날 맑은 정신이 돌아왔을 때 어머니가 길 건너 큰 건물을 가리키며 "저 집은 뭐 하는 곳이냐"고 물었다. "대학교예요. 어머니." "내 아들도 저기를 가야 허는디…. 못 가르친 것이 한스럽다."

중졸 과일 장수 강경채(53)씨가 24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학사모를 썼다. 그는 2년간 치매 어머니를 트럭에 태우고 다니며 장사하다가 2003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늦공부를 시작했다. 어머니가 맑은 정신으로 던진 그 한마디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과일 장사를 계속하면서 2006년 독학으로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2009년 집 근처 경복대의 2년제 경영학과(야간)를 졸업했다. 이어 평생교육진흥원에서 운영하는 학점은행제를 이용해 이날 사회복지학 학사 학위를 땄다.

그는 학위 수여식 하루 전인 23일도 평소처럼 새벽 3시에 집을 나섰다. 구리농산물시장에서 과일을 떼다 남양주 아파트단지를 돌며 팔고 오후 6시 넘어 집으로 갔다. 그는 "어머니 묘가 집에서 가깝다"고 했다. "트럭 몰고 들어오다가 어머니 묘소 지날 때 어머니한테 말을 걸었어요. '어머니, 어머니 아들이 학사모를 두 개나 썼어요. 하늘에서도 춤추고 계시지요? 어머니 아들이 해냈응게 인자 맘 푹 놓으시오'."

고향은 나주시 봉황면 옥산리다. 부모는 날품을 팔았다. 3남3녀 중 위로 넷은 초등학교만 나왔다. 다섯째인 강씨와 막냇동생만 중학교를 마쳤다. 강씨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계속 반장을 했다. 봉황중 다닐 때도 장학금을 놓친 적이 없다. 장학금 줄 테니 오라는 고등학교가 두 곳 있었지만 그는 졸업하자마자 형이 있는 서울에 올라와 철공소에 들어갔다. 풀빵 때문이었다.

"학교 앞에서 풀빵을 팔았는데, 그것을 꼭 한번 사먹고 싶은데 한 번도 못 먹었어요. 풀빵에 한이 맺혀 '공부고 뭐고, 돈부터 벌자' 생각했어요."

철공소 다니다 노점상을 거쳐 과일 장사를 시작했다. 리어카로 시작해 1t 트럭을 샀다. 온종일 구성지게 "바나나 설탕바나나 한 다발에 3000원, 사과 꿀사과 마흔두 개 한 박스에 1만5000원…"을 외쳤다. 중·고생 남매 키울 때 어머니가 치매에 걸렸다. 온종일 차 몰고 다니는 자기가 다른 형제들보단 어머니를 모시기가 나을 것 같았다. 어머니는 77세, 그는 42세였다.

"싫지 않았어요. 어머니니까. 트럭을 타고 어머니와 둘이 다니는 게 좋았어요. 얘기도 하고 바람도 쐬고 경치 좋은 데 나오면 쉬어도 가고…."

2003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그는 그동안 못 번 돈을 벌충하려고 매일 밤 10시까지 강행군했다. 3년 만에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고 우울증이 왔다. 두 번이나 뒷산 바위에 올라가 뛰어내리려 했다. 살아갈 목표가 필요했다. "못 가르쳐 미안하다"던 어머니 말씀이 '유언'으로 다가왔다.

강씨는 어머니를 모신 이래 한 달에 200만원 벌어 10만원씩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부해왔다. 앞으로 사회복지사로 취직하는 게 꿈이다. 부인은 자동차 부품 회사 직원, 산후 도우미 등으로 일해 아들·딸·남편 등 대학생 셋을 뒷바라지했다. 부부의 전 재산은 의정부 용현동 주공아파트(69㎡) 한 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