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값 최고치 경신… 소비량은 오히려 늘어

지난 23일 국내 주유소 보통 휘발유 평균 가격은 리터(L)당 1993.82원으로 지난해 10월 31일 기록했던 역대 최고치 1993.17원을 돌파했다. 앞서 22일엔 서울 지역 휘발유 가격이 L당 2070.01원을 나타내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하지만 이런 고유가에도 국내 휘발유 소비량은 급증하고 있다. 24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1월 국내 휘발유 소비량은 582만배럴, 2010년 1월의 541만배럴보다 7.59% 늘었다. 역대 1월 소비량 중 최대치다.

지난해 전체 소비량은 6957만배럴로 1997년(7136만배럴)에 이어 역대 2위를 기록했다. 비싼 기름값 탓에 허리가 휜다고 아우성이지만 '펑펑' 쓰는 과소비 패턴엔 변화가 없다는 분석이다. 국내 소비 휘발유의 97%는 자동차 연료용이다. 반면 트럭용 경유(디젤), 난방용 등유와 액화석유가스(LPG) 등 서민용 연료 소비는 줄어들어 불경기와 고유가에 따른 소비 자제 현상이 뚜렷했다.

휘발유값이 오르는데도 소비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뭘까. 기름값이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하자 소비자들이 가격에 둔감해졌다는 분석이 첫째다. 한국석유공사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전국 휘발유 가격이 L당 1990원대까지 급등한 뒤 11월부터 점차 하향 안정세를 나타내자 소비자들이 이 가격을 비교적 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과소비에 길들여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휘발유 소비량은 작년 10월 581만배럴로 소폭 감소했다가 11월 587만배럴, 12월 621만배럴로 늘었다.

휘발유가 '다른 제품에 비해 가격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제품'이라는 분석도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김형건 연구위원은 "자동차를 사는 시점에 유가가 높으면 연비를 고려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람들이 일단 차를 사고 나면 기름값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습관적으로 차를 굴린다"고 말했다. 실제 교통연구원 통계를 보면, 유가가 올라도 운행 거리는 줄지 않았다. 자동차 대당 연간 휘발유 소비량은 2010년 1192L에서 작년 1168L로 2% 줄었을 뿐이다. 이 기간에 휘발유 가격이 11.34% 오른 것을 감안하면 대당 연료비는 10%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서민용 연료는 값이 오르면서 소비가 줄었다. 지난해 경유는 전년 대비 0.51% 줄어든 1억3396만배럴이 팔렸다. 등유와 LPG 판매는 더 큰 폭으로 감소해 각각 9918만배럴과 2541만배럴에 그쳤다.

지난 23일 거래된 두바이산 원유 현물가격은 전날보다 0.8달러 오른 120.22달러를 기록했다.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120달러를 넘은 것은 2008년 8월 4일(122.51달러) 이후 3년 6개월 만에 처음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이달 초 이란 사태가 최악으로 흐르면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내놓았다.

김 연구위원은 "유류세 비중이 커 국제 유가 인상분이 국내 휘발유값에 미치는 영향은 30% 수준"이라며 "유가가 25% 올라 150달러가 되면 전국 주유소 보통 휘발유 평균 가격은 지금보다 10% 이상 비싼 L당 2200~2300원 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L당 2300원대인 서울 중심가의 보통 휘발유 가격은 2600원으로 뛰고, 2600원 수준인 서울 지역 고가 주유소의 고급 휘발유 가격은 3000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