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계의 스티브 잡스 "창의력 비결은 무한반복"
입력 : 2012.02.25 03:06 | 수정 : 2012.02.25 07:19
1년에 6개월만 문열고 나머지 절반은 음식 연구, 끊임없이 재료 찾고 실험
페란 아드리아 "실습생들 아이디어에서 결코 영감 받지 않는다"
180일의 엘불리
리사 아벤드 지음｜서지희 옮김｜시공사｜396쪽｜1만4000원
6개월간 하루 14시간 근무에 보수는 없음, 하루 식사 한 끼 제공, 식사시간 30분에 치우는 시간 5분, 엄격한 복명복창(復命復唱), 화장실도 허락받고 가기, 두 번 이상 지각하면 귀가 조치 그리고 조직원은 여단(Brigade)으로 불리는 조직. 물론 여기는 군대가 아니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 산속에 있지만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불리는 '엘불리(El Bulli)'의 실습생들이 반년 동안 준수해야 할 규칙이다. 1년에 절반, 그것도 저녁에만 영업(지난해 7월 말에는 아예 문을 닫았다)해도 2년치 예약이 밀렸었고, 30여명을 뽑는 실습생 경쟁률은 100대 1이 넘는 미슐랭 별 3개에 빛나는 레스토랑 엘불리.
이 책은 2009년 6개월 동안 실습생들과 함께 엘불리 주방에서 보낸 관찰기다. 오후 7시 반 "자, 세뇨레스(여러분), 시작합시다"는 구령과 함께 매일 5시간씩 벌였던 전쟁의 기록이다. 그러나 요리법을 안내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요리계의 스티브 잡스'격인 전설적 요리사 페란 아드리아(Ferran Adria·50)와 엘불리 문화를 통해 세계인의 혀를 사로잡은 창의력의 원천을 보여준다. 잡스에게 "다르게 생각하라"가 있다면 페란에겐 "따라 하지 말라. 심지어 자기 아이디어조차도"가 있다.
리사 아벤드 지음｜서지희 옮김｜시공사｜396쪽｜1만4000원
6개월간 하루 14시간 근무에 보수는 없음, 하루 식사 한 끼 제공, 식사시간 30분에 치우는 시간 5분, 엄격한 복명복창(復命復唱), 화장실도 허락받고 가기, 두 번 이상 지각하면 귀가 조치 그리고 조직원은 여단(Brigade)으로 불리는 조직. 물론 여기는 군대가 아니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 산속에 있지만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불리는 '엘불리(El Bulli)'의 실습생들이 반년 동안 준수해야 할 규칙이다. 1년에 절반, 그것도 저녁에만 영업(지난해 7월 말에는 아예 문을 닫았다)해도 2년치 예약이 밀렸었고, 30여명을 뽑는 실습생 경쟁률은 100대 1이 넘는 미슐랭 별 3개에 빛나는 레스토랑 엘불리.
이 책은 2009년 6개월 동안 실습생들과 함께 엘불리 주방에서 보낸 관찰기다. 오후 7시 반 "자, 세뇨레스(여러분), 시작합시다"는 구령과 함께 매일 5시간씩 벌였던 전쟁의 기록이다. 그러나 요리법을 안내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요리계의 스티브 잡스'격인 전설적 요리사 페란 아드리아(Ferran Adria·50)와 엘불리 문화를 통해 세계인의 혀를 사로잡은 창의력의 원천을 보여준다. 잡스에게 "다르게 생각하라"가 있다면 페란에겐 "따라 하지 말라. 심지어 자기 아이디어조차도"가 있다.
"이건 마술이야!"
"이건 마술이야. 우리 고객 중에 30% 정도는 싫어하겠지만, 그래도 이건 마술이야."(193쪽) 페란은 흰색 요구르트에 검은 깨 페이스트 한 숟가락을 휘저은 음식을 받아들고 이렇게 말한다. 고객의 3분의 1을 버리더라도 창조적인 음식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 엘불리의 정신. 2008년 시즌, 페란은 "장미꽃잎을 이용한 요리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 스태프들은 에콰도르까지 뒤져 식용 장미꽃잎을 수송했고, 여러 실험을 거쳐 요리를 만들어낸다. 꽃잎을 세 번 데치면서 사이사이 얼음물에 담갔다 빼면서 쓴맛을 없애고 압력 조리기에 넣어 먹기 좋은 질감을 만들어냈다. 새끼염소 콩팥, 토끼 골, 닭의 연골, 새끼비둘기 등 기상천외한 요리들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이렇게 한 시즌을 거치면서 '발명'되는 요리가 많게는 수십 가지가 되며 매일 저녁 손님에겐 30여 가지의 요리가 서빙된다. 하지만 손님 입장에서 맛있게 먹었던 요리를 다시 만나는 것은 어렵다. "따라 하지 말라"는 모토처럼 엘불리는 이미 새로운 요리로 전진하고 있기 때문.
번뜩이는 영감? 시간 투자뿐
한때 '요리계의 과학자'로도 불린 페란은 "(창의력의) 비법은 없다. 그저 시간을 계속 쏟아붓는 수밖에"(223쪽)라고 말한다. 비결이 있다면 영업하지 않는 반년 동안 전 세계를 돌면서 끊임없이 새 재료를 찾고 실험을 거듭하는 것. "새로운 채소, 아무도 맛본 적 없는 향신료, 멀고 먼 나라에서 온 조미료를 맛보는 순간 수많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210쪽)는 것이다. 페란은 특히 일본, 타이, 한국, 노르웨이, 아마존의 식재료에서 영감을 얻곤 했다. 하지만 새 아이디어가 단번에 성공하는 일은 없다. 처음엔 피스타치오 다음엔 해바라기 씨앗 등 함께 쓸 재료를 반복 실험하는 과정에서 걸작이 탄생한다. 페란의 지시이든, 스텝의 아이디어든 처음 발명된 요리는 페란의 검증을 거쳐야 한다. 페란의 완벽주의와 카리스마는 무시무시할 정도. 이때는 온 식당 구성원의 눈길이 페란의 입으로 향한다. 마침내 "마술"이란 단어가 나오면 정식 메뉴로 올려진다. 그리고 '막 입에 넣은 음식을 맛보다가 큰 소리로 웃는' 손님을 보는 엘불리 사람들 마음에도 자부심이 피어오른다. 하지만 이렇게 몇주를 걸려 완성한 요리도 사흘 만에 메뉴에서 빠지는 것이 부지기수. 그리고 페란은 자문한다. "어떻게 하면 더 완벽하게 만들 수 있을까?" 물론 이 과정에서 실습생들과 아이디어 회의를 연다. 세계 각국에서 온 실습생들은 자국 음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지만 모두 퇴짜 맞는다. 페란은 저자에게 슬며시 귀띔한다.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그럼에도 실습생들은 모든 과정을 통해 창의가 뭔지를 깨닫게 되고 "엘불리 실습 경험은 세례와 같다. 그것 없이는 진정한 크리스천이 될 수 없듯"이라고 고백한다.
새로운 도전
잠시도 쉬지 않고 혁신과 창조의 길을 달려온 페란과 엘불리는 작년 하반기 자진해서 문을 닫고 싱크 탱크로 변신을 준비 중이다. 2010년 런던에서 열린 세계 50대 레스토랑 시상식에선 4년 만에 처음으로 덴마크의 노마에 밀려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페란은 결과에 대해 실망하기는커녕 사기가 충만하다. 시상식장에서 페란의 부인은 저자에게 말한다. "모르시겠어요? 그이는 해방된 거라고요." 이제 레스토랑 운영이라는 짐마저 벗어놓고 여전히 실험을 통한 창조를 반복하고 있을 페란이 새롭게 들고 나올 결과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이건 마술이야. 우리 고객 중에 30% 정도는 싫어하겠지만, 그래도 이건 마술이야."(193쪽) 페란은 흰색 요구르트에 검은 깨 페이스트 한 숟가락을 휘저은 음식을 받아들고 이렇게 말한다. 고객의 3분의 1을 버리더라도 창조적인 음식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 엘불리의 정신. 2008년 시즌, 페란은 "장미꽃잎을 이용한 요리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 스태프들은 에콰도르까지 뒤져 식용 장미꽃잎을 수송했고, 여러 실험을 거쳐 요리를 만들어낸다. 꽃잎을 세 번 데치면서 사이사이 얼음물에 담갔다 빼면서 쓴맛을 없애고 압력 조리기에 넣어 먹기 좋은 질감을 만들어냈다. 새끼염소 콩팥, 토끼 골, 닭의 연골, 새끼비둘기 등 기상천외한 요리들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이렇게 한 시즌을 거치면서 '발명'되는 요리가 많게는 수십 가지가 되며 매일 저녁 손님에겐 30여 가지의 요리가 서빙된다. 하지만 손님 입장에서 맛있게 먹었던 요리를 다시 만나는 것은 어렵다. "따라 하지 말라"는 모토처럼 엘불리는 이미 새로운 요리로 전진하고 있기 때문.
번뜩이는 영감? 시간 투자뿐
한때 '요리계의 과학자'로도 불린 페란은 "(창의력의) 비법은 없다. 그저 시간을 계속 쏟아붓는 수밖에"(223쪽)라고 말한다. 비결이 있다면 영업하지 않는 반년 동안 전 세계를 돌면서 끊임없이 새 재료를 찾고 실험을 거듭하는 것. "새로운 채소, 아무도 맛본 적 없는 향신료, 멀고 먼 나라에서 온 조미료를 맛보는 순간 수많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210쪽)는 것이다. 페란은 특히 일본, 타이, 한국, 노르웨이, 아마존의 식재료에서 영감을 얻곤 했다. 하지만 새 아이디어가 단번에 성공하는 일은 없다. 처음엔 피스타치오 다음엔 해바라기 씨앗 등 함께 쓸 재료를 반복 실험하는 과정에서 걸작이 탄생한다. 페란의 지시이든, 스텝의 아이디어든 처음 발명된 요리는 페란의 검증을 거쳐야 한다. 페란의 완벽주의와 카리스마는 무시무시할 정도. 이때는 온 식당 구성원의 눈길이 페란의 입으로 향한다. 마침내 "마술"이란 단어가 나오면 정식 메뉴로 올려진다. 그리고 '막 입에 넣은 음식을 맛보다가 큰 소리로 웃는' 손님을 보는 엘불리 사람들 마음에도 자부심이 피어오른다. 하지만 이렇게 몇주를 걸려 완성한 요리도 사흘 만에 메뉴에서 빠지는 것이 부지기수. 그리고 페란은 자문한다. "어떻게 하면 더 완벽하게 만들 수 있을까?" 물론 이 과정에서 실습생들과 아이디어 회의를 연다. 세계 각국에서 온 실습생들은 자국 음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지만 모두 퇴짜 맞는다. 페란은 저자에게 슬며시 귀띔한다.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그럼에도 실습생들은 모든 과정을 통해 창의가 뭔지를 깨닫게 되고 "엘불리 실습 경험은 세례와 같다. 그것 없이는 진정한 크리스천이 될 수 없듯"이라고 고백한다.
새로운 도전
잠시도 쉬지 않고 혁신과 창조의 길을 달려온 페란과 엘불리는 작년 하반기 자진해서 문을 닫고 싱크 탱크로 변신을 준비 중이다. 2010년 런던에서 열린 세계 50대 레스토랑 시상식에선 4년 만에 처음으로 덴마크의 노마에 밀려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페란은 결과에 대해 실망하기는커녕 사기가 충만하다. 시상식장에서 페란의 부인은 저자에게 말한다. "모르시겠어요? 그이는 해방된 거라고요." 이제 레스토랑 운영이라는 짐마저 벗어놓고 여전히 실험을 통한 창조를 반복하고 있을 페란이 새롭게 들고 나올 결과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