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누가 마흔살을 노처녀라고 하는가

"대학을 졸업한 여자가 마흔살을 넘기면 결혼할 가능성보다 테러리스트에 의해 죽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말은 1986년 '뉴스위크'지에 처음 등장했다.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비롯해 각종 드라마와 영화, 시트콤에 인용되면서 이 악의적인 문장은 농반진반의 분위기 속에 특별한 거부감 없이 퍼져나갔다.

그런데 사정이 달라졌다. 현재 40세인 여성에게 이런 말을 했다간 뺨을 맞을지도 모른다. '노처녀'라는 말을 함부로 쓰면 시대착오적인 사람이 된다. 남녀 모두 '결혼의 적령기는 마흔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적어도 연예인들의 결혼적령기는 마흔에 가까워진 듯하다. 이병헌(42)·배용준(40)·안재욱(41) 같은 스타들이 이미 마흔을 넘겼고, 여성 연예인도 김혜수(42)·이소라(43)·엄정화(43)·장서희(40) 등 싱글이 부지기수다. 아나운서 출신 탤런트 임성민은 43세에 외국인 교수와 결혼해 화제가 됐다.

실제로 40대 초혼의 비율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이 발간한 '혼인동향'에 따르면, 40세 이상 초혼자 수가 10년 전에 비해 남성은 4배 가까이, 여성은 2배 이상 증가했다. 결혼정보업체 '듀오'의 경우 2011년 40대 초혼 가입회원이 전년대비 58.2% 증가했다. 2001년에 비하면 3배나 급증한 셈이다.

'만혼(晩婚)'이 증가하는 첫째 이유는 경제적 여건 때문이다.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안태윤 연구위원은 "경제적 안정권에 접어드는 연령이 남녀 모두 계속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집 장만, 육아와 교육에 대한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결혼을 미룬다는 얘기다. 그러나 경제적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듀오의 형남규 이사는 "과거에는 결혼적령기가 있어서 비슷한 나이에 결혼을 하는 획일적인 흐름이 있었지만 결혼에 대한 나이의 경계가 점차 사라지면서 최근에는 조혼·만혼·재혼·황혼 결혼 등 전 연령대에 걸쳐 결혼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나이 해체 현상은 여성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젠더-나이 체제와 여성의 나이'란 제목의 논문으로 이달 박사학위를 받은 이화여대 여성학과 전희경씨는, "30대 비혼여성들의 집단적 증가는 노처녀라는 말을 시대착오로 만들었고, 황혼의 나이에 이혼을 하거나 재혼을 하는 여성들, 남편 없이 아이를 낳는 '미스 맘', 경제불황과 취업난 속에 20대 초에 결혼을 선택하는 여성들을 가리키는 신(新)조혼 경향 등은 여성의 삶을 결혼을 중심으로 조직했던 나이 규범이 해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서술한다.

결혼에 대한 인식 자체도 진화하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와튼스쿨의 벳시 스티븐슨 교수는 '기호결혼(hedonic marriage)'이란 표현을 쓴다. 경제적 이익과 안정을 위해 서둘러 결혼하는 게 아니라 일과 여행, 연애를 싱글로 실컷 즐긴 뒤 '둘이 함께 즐기면 더 좋은 것들'을 누리기 위해 결혼한다는 것이다. '예쁜 서른, 섹시한 마흔'의 저자인 뷰티 컨설턴트 피현정씨는 "육체적인 노화, 신체적인 나이가 과거에 비해 10년 이상 늦춰진 게 사실"이라면서, "아기를 생산해 키우는 것을 결혼의 제1목적으로 삼지 않는다면 30대 후반에 결혼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만혼의 장점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높다. 출판사 대표로, 마흔 두살에 결혼한 김이금(46)씨는 "20대에 멋모르고 결혼했으면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데서 오는 고통, 가족관계에서 겪는 갈등을 이겨내지 못하고 뛰쳐나갔을 것"이라면서 "오랜 사회경험, 인간관계를 만들어오면서 터득한 지혜가 결혼생활을 원만하게 유지해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결혼연령이 늦어진 만큼 이혼이 줄었다는 통계청의 '2010년 혼인·이혼 통계결과'는 만혼의 만족도가 높음을 방증한다. 40세가 결혼적령기로 각광받을 날이 멀지 않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