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회전율 높고 세련된 인테리어… 중고서점의 변신

"총 3권 맞으시죠? 모두 1만2000원 결제해드리겠습니다."

지난 23일 오후 종로 2가 한 건물 지하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적 매장은 주변 대형 서점 못지않게 북적였다. 서점이 입점한 곳이 지난해 폐업한 나이트클럽 자리여서 아직도 건물에 붙어 있는 나이트클럽 간판을 보며 재미있어 하는 손님도 있었다. 지하로 가는 매장 입구 계단에는 '오늘 들어온 책 3240권'이라는 안내가 붙어 있었다. 현재 이곳에는 6만 권의 중고서적이 '경제·경영' '소설' '아동' 등 분야별로 정리돼 판매되고 있었다.

국내 유명 온·오프라인 서점들이 잇따라 중고서점을 열고 있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은 지난 2008년 인터넷으로 중고서적을 사고팔기 시작한 데 이어 작년 9월 종로에 첫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다. 알라딘 종로점장 서오현씨는 "지난 4년 동안 중고서적을 온라인 판매해본 결과 2배 이상 매출이 증가했다"며 "책의 상태를 직접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하는 손님들이 많아 오프라인까지 진출했다"고 말했다.

대형서점에서 중고 서적을 다루는 것은 알라딘이 처음은 아니다. 북스리브로는 지난 2010년 3만권의 중고 서적을 확보해 강남역의 한 영화관 지하에 매장을 열었다. 전체 130평 매장에서 30평만 신간 코너로 꾸미고 나머지 100평을 '유북'이라는 브랜드로 '서점 속 헌책방'을 시작한 것. 당시 이 서점은 하루 수익이 1000만원이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만 1년도 채 되지 않아 폐점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고객이 몰리면서 판매할 헌책 재고가 동이 난 것. 북스리브로 관계자는 "(강남점은) 장사가 잘 되다 보니 판매되는 양이 매입하는 권수를 초과해 결국 재고 부족으로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현재 북스리브로는 강남점 모델을 살려 서울 을지점, 경기도 일산 화정점, 분당 야탑점, 부산점 등 4곳에 '서점 속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을지로점 직원 박모씨(35)는 "처음 개장했을 때는 새 책인 줄 알고 왜 이렇게 싸냐며 놀라는 손님들도 많았다"며 "6평의 한정된 공간에 베스트셀러나 화제가 됐던 책 위주로 진열하며 '회전율'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신형 중고서점의 등장과 함께 서울 시내에는 학술 고서를 판매하는 인사동 책방들과 참고서와 소설을 주로 다루는 청계천 헌책방 골목, 대형서점 시스템인 알라딘, 북스리브로 등 최소 3~4가지 형태의 헌책방이 공존하게 됐다. 출판평론가 표정훈씨는 "과거 헌책방은 그야말로 '헌'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면 알라딘 같은 중고서점은 그런 퀴퀴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기존의 '낭만'보다 서적이 2차로 유통되는 소비공간으로 변화했다"며 "특히 기존 헌책방은 주인들이 눈대중으로 가격을 매겼던 반면 요즘은 바코드를 이용해 객관적 기준에 따라 가격을 측정하는 현대식 시스템을 선호하기 때문에 인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청계천 중고서점가의 경우 규모나 비중이 점점 축소되고 있다. 한때 160개나 됐던 책방들 중 32개 정도가 남아 명맥을 이어가는 상황. '대광서림' 김광섭씨는 "작년에만 이곳에서 3곳이 폐점했는데 주인들 나이가 많아 폐점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장사도 잘 안된다"며 "젊은 사람들이 한문이 많은 옛날 책을 멀리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한 서점주는 대형 중고 서점들이 인기를 끄는 것에 대해 "재벌 빵집이 동네 빵집 죽이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도 했다.

일부 서점은 구하기 힘든 책을 다루며 여전히 '자존심'을 지켜가고 있었다. 36년째 운영 중인 상현서림에는 한자 제목에 비닐 커버를 입힌 정비석의 '자유부인' 1954년 초판과 신봉승의 '조선왕조 500년' 전집 48권 같은 책들을 구비하고 있었다. 이 서점 주인 이응민씨는 "이제 청계천에도 진짜 헌책방은 몇 개 남지 않은 것이 아쉽다"면서 "그래도 쉽게 이윤을 남기기보다는 품질 좋고 귀한 옛 책을 지키고 또 다음 세대에 전해주는 것이 서적 유통의 한 분야를 맡고 있는 우리의 일 아니겠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