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생활 50년 손숙 목소리에 엄마를 담는다

"라디오는 사람들을 상상하게 하잖아요. TV처럼 일방적으로 주어지지 않고 듣는 사람의 상상을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는 게 라디오의 매력이에요. 그 매력이 제일 잘 드러나는 게 라디오 드라마 아닐까요."

22일 서울 우면동 EBS 방송센터 녹음실. 배우 손숙(68)이 헤드폰을 쓰고 마이크 앞에 앉았다. EBS가 27일부터 방송하는 라디오 드라마 '엄마를 부탁해' 녹음을 위해서였다. 손숙은 지난해 신경숙 원작의 동명 연극에서도 엄마 역할을 맡아 이 작품이 익숙한 배우. 이번엔 엄마 역할과 해설까지 1인2역을 맡는다. 이날 손숙은 차분한 목소리로 해설을 읽어가다가도 엄마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그는 이날 총 20부작 가운데 10회분을 약 3시간에 걸쳐 녹음했다. 10분씩인 1회 분량을 녹음하는 데 걸린 시간이 20분 정도. 녹음이 끝난 뒤 만난 손숙은 "내년이면 연기를 시작한 지 50년이 되는데 라디오 드라마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TV드라마, 영화, 연극을 오랫동안 했지만 라디오 드라마만 못 해본 게 늘 아쉬웠다"고 했다.

"며칠 전 신경숙 작가를 만나 식사를 하면서 라디오 드라마에서도 엄마 역을 맡게 됐다고 얘기했어요. (신 작가가) '라디오로 나오면 또 색다른 재미가 있을 것 같다'며 응원해 줬지요."

그는 "틀리면 다시 할 수 있는 라디오가 한 번에 다 보여줘야 하는 연극보다는 부담이 덜하다"면서도 "목소리로만 연기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고 했다. "표정이나 몸짓으로 감정을 전달할 수가 없으니까요. 연극을 하면서 '엄마'라는 인물을 알게 된 게 도움이 많이 돼요. 그게 없었다면 책 읽는 것처럼 어색하게 들렸을지도 모르죠."

손숙은 "'엄마'는 영원한 테마"라고 했다. "해설 중에 '엄마는 부엌이었고, 부엌은 엄마였다'는 표현이 나와요. 누구나 엄마는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잖아요. 그러다가 엄마도 여자였다는 점을 깨닫는 거죠." 드라마 후반부에는 엄마가 그리워했던 남자를 암시하는 대목이 나온다고 한다. 그는 "이 부분에서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며 "이런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청취자들도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엄마 역할을 맡았지만 딸들의 마음에도 공감하게 됐다"고도 했다. "딸이 수첩을 보면서 오빠한테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놓은 목록에 엄마랑 함께하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거였죠." 딸 셋을 둔 엄마인 손숙은 "원래 행복하고 즐거울 때는 부모 생각을 잘 못하지 않느냐"며 "이제는 딸들이 서운하게 해도 나무라지 않는다"고 했다.

라디오 드라마가 점점 사라지는 지금, 10분짜리 드라마가 성공할 수 있을까. 손숙은 이에 대해 "모든 프로그램을 청취율만 보고 만들 수는 없는 일"이라고 했다. "요즘 라디오를 들어 보면 출연진끼리 수다를 늘어놓는 게 너무 많아요. 듣고 나면 남는 게 없죠. 좋은 작품으로 청취자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는 프로그램도 하나쯤 필요하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