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신문화의 탄생'] [16] 관능적 佛영화 히트하자 '뻘거버슨 모던껄' 패션

1920년대 경성에 상설 영화관 시대가 개막된 이후, 활동사진에 가장 깊이 빠진 계층은 중·고등학생과 젊은 여성들이었다. 여성들은 "러브씬 즉, 남녀가 붓안고 키쓰를 하거나 속삭이는 장면을 보고 '애고머니 엇저면…' 소리를 질르다 못해 겻헤 안진 동모를 끼어안고 굴르다시피"했다. 학생들은 정탐극(偵探劇)이나 연애극을 자주 봤고 "젊은 녀학생들은 사치스러운 생활이나 외국 녀배우들의 류행하는 옷매무새들 보기에 정신이 팔리고"있었다.(조선일보 1929년 4월 5일자)

스크린의 문화 충격은 젊은이들 행동에까지 곧바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활동사진 시대가 열린 지 몇 해 되지도 않아 '영화 모방 문제'가 지면에 떠오른다. "일본에서 7년간 감옥에 수감된 소년범 994인 중 활동사진을 보고 범행한 자가 무려 985인"이라는 뉴스가 크게 보도되더니(1921년 11월 30일자), 1923년엔 이 땅에서도 "활동사진을 구경한 아희들이 철로 궤도에다가 돌을 노하 긔차를 파괴하랴든" 사건이 일어나 경찰과 교육 관계자들이 '활동사진 부작용 방지단(防止團)'을 만든다는 뉴스가 보도됐다.(1923년 1월 13일자) 그럼에도 영화를 본 소년들이 스크린에서 본 대로 남의 집에 불을 놓거나(1927년 7월 6일자) 상점의 물건을 훔친(1931년 5월 14일자) 일이 이어지더니, 1934년 평양에서는 19세 청소년이 탐정영화를 흉내 내 7세 소년을 고문하는 '놀이'를 하다가 숨지게 하는 사건까지 터졌다.(1934년 8월 25일자)

다른 한편으로, 유명 외국 배우들의 스타일과 패션을 따라 하는 젊은이들이 등장했다. 영화는 초창기부터 모든 유행을 이끌었다. 찰리 채플린, 버스터 키튼과 함께 무성영화시대 3대 코미디 스타였던 해럴드 로이드의 1917년 영화 '로이드의 야구'가 상영된 이후 이 땅에서는 동그란 '로이드 안경'과 맥고모자의 로이드 스타일이 크게 유행했다. '상록수'의 소설가 심훈도 로이드 안경을 즐겨 썼다. "빠렌티노(이탈리아 배우 루돌프 발렌티노)의 귀밑머리가… 조선 청년들의 뺨에다가 염소털을 붓처 노핫고, 뻐스터 키톤의 젬병모자가 조선 청년의 머리에 쇠똥을 언저 주엇스며, 미국 서부활극에 나오는 카-보이의 가죽바지가 조선 청년에게 나팔바지를"입게 만들었다. "학교의 수신 과뎡보담도 목사의 설교보담도, 또한 어버이의 회채리보담도 감화되기에 빠른 것은 스크린에 꺼?다 나타낫다 하는 그림자"라고 할 만큼 영화는 위력적이었다.(1928년 2월 7일자)

여성들의 관능적 댄스가 이어지는 프랑스의 몽환적 영화 '몽 파리(Mon Paris)'가 1929년 6월 크게 흥행하자 그해 여름 모던 걸들 패션에 당시로선 충격적일 만큼 몸을 노출하는 '몽 파리 패션'이 밀어닥쳤다. "거미줄보다 설핏한 그 옷 사히로 움즉이는 모던 껄들의 몸둥아리니, 그들은 큰 길거리를 뻘거버슨 몸으로 질풍가티 쏘다니는" 풍경이 연출됐다. "녀름만은 그 녀자들을 불란서 파리나 미국 헐리웃드로 귀양을 보냇스면" 어떠냐고 이죽거리는 의견도 제시됐다.(1929년 7월 27일자) 조선일보는 외국 영화 속 사치스러운 생활에 넋 나간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한번 입어내 버리는데 멧 천원(수천만원)식이나 드리는 픽포드(1920년대 미국 여배우 메리 픽포드)의 의상이 그대들의 한벌밧게 업는 무명 고쟁이만 갓지 못하고, 칠면조의 혓바닥이 된장 찌개에 풋고초를 씹는 맛만 갓지 못한 것이다."(1929년 4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