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한·박정환 "내가 2인자… 이번엔 결판 내자"

국내 최강의 기사가 누구냐에 대해선 누구도 이견이 없다. 24개월째 연속 랭킹 1위를 고수 중인 이세돌(29)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세돌 바로 뒤의 추격자는 누구일까. 이 대목이 좀 애매하다. 최철한(27)과 박정환(19) 간의 팽팽한 각축이 2년 가깝게 이어지고 있기 때문.

모든 면에서 난형난제다. 우선 둘 모두 현역 세계챔피언이다. 최철한은 잉씨배, 박정환은 후지쓰배를 보유 중이다. 국내무대에선 박정환이 GS칼텍스배와 바둑왕을, 최철한은 천원을 갖고 있다. 박정환이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2관왕 경력을 내세운다면 최철한은 '바둑올림픽'으로 불리는 잉씨배에서 한국 톱스타의 법통을 이었다는 자부심이 크다.

통산기록을 비교해도 우열 가리기가 쉽지 않다. 최철한이 총 12회(세계대회 2회), 박정환은 7회(세계대회 1회) 우승했다. 8살의 나이 차, 9년의 프로경력 차를 감안하면 이 부문 또한 막상막하다. 둘 모두 70%가 넘는 통산 승률을 작성 중이다. 올타임 7할 이상 승률을 기록한 국내기사는 통틀어 단 7명뿐이다.

한국랭킹에서도 둘의 접전은 숨막히게 전개돼 왔다. 2위 자리를 주거니받거니 하며 선두 이세돌의 자리를 노리는 싸움이 15개월째 연속 펼쳐지고 있는 것<표 참조>. 최근 6개월 간 박정환이 최철한보다 한 발 앞서 오긴 했지만 점차가 워낙 근소해 언제 바뀔지 모르는 살얼음판이다.

그런 관계임에도 맞대결이 뜸했던 둘이 최근 잇달아 칼을 섞어 팬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지난 한 주에만 2합을 겨뤄 1승씩 나눠 가졌다. 21일 벌어진 제7기 원익배 8강전서 최철한이 흑으로 불계승하자 26일 열린 제13기 맥심배 결승3번기 1국에선 박정환이 흑 불계로 설욕했다. 통산전적은 6승 4패로 박정환이 약간 앞서 있다.

둘의 정면충돌은 내달 5일 제주도 하얏트리젠시호텔서 열릴 맥심배 결승 2국으로 이어진다. 박정환이 이 바둑도 이길 경우 국내타이틀 보유 수는 3대1로 바뀌고, 랭킹도 2위 수성(守城)은 물론 1위 도약의 디딤돌이 마련될 것이다. 최철한으로서도 2·3국 연승으로 2관왕에 오른다면 6년여 만의 톱랭커 복귀를 꿈꿀 수 있다. 그는 2006년 1월 딱 한 차례 1위에 올라봤었다.

이번 맥심배 결승은 이런 시의(時宜)성과 함께 '입신(入神·九단의 별칭)'들만의 경연장이란 상징성이 겹쳐 더욱 주목받고 있다. 성적을 단위에 반영한 이후부터 九단의 권위는 크게 높아졌다. 최철한은 역대 네 번째로 빠른 12살 때 입단, 19살에 九단이 됐고 맥심배를 두 번 제패했다. 국내 최연소 입신기록(17세11개월)을 가진 박정환은 이번 맥심배 데뷔무대서 최연소 우승을 조준 중이다.

둘 모두 국내 최고의 기사 연구모임인 '신사연구회' 멤버다. 이들과 같은 회원인 이영구 九단은 "둘은 나이 차가 커 살갑게 어울리는 사이는 아니지만 실력적으론 존중하는 사이"라고 분위기를 전한다. "연구실에서 둔 바둑에서 정환이에게 거의 졌다"는 최철한의 말은 엄살(?)이란 것. 맥심배 1국 승리 후 "상대가 워낙 강해 2국도 배우는 자세로 두겠다"고 한 박정환의 말 역시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아리송하다.

날로 치열해져가는 바둑 무림(武林)에서 둘은 양립이 불가능한 관계다. 상대를 밟고 넘지 못하면 전진은커녕 밑에서 쳐올라오는 신예군(群)에 휘둘려 추락할 수도 있다. 맥심배 남은 두 판이 향후 바둑계 전체 판도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는 이유다. 분명한 것은 이들에게 2위는 궁극 목표가 아니란 사실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