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오일 시대… 산유국에도 신재생 에너지 바람

중동의 석유부국(富國) 카타르는 1930년대까지만 해도 국민들이 페르시아만에서 진주를 캐서 생계를 이어갔다. 당시 진주는 유럽 부호들이 좋아하는 카타르의 대표 수출품이었다. 하지만 일본에서 양식(養殖) 진주를 개발한 후 수백년을 이어온 카타르 국민들의 생업은 한순간에 몰락했다.

셰이크 하마드 카타르 국왕은 지난 9일 카타르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카타르는 '진주의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태양광·해수담수화 사업 등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타르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풍부한 산유국이다. 국민소득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석유자원이 고갈되거나 지구촌의 주력 에너지원이 신재생 에너지로 대체되면 언제든지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김상협 청와대 녹색성장기획관은 "카타르 정부는 포스트 오일(Post-Oil) 시대를 준비하지 않으면 국민에게 지지를 받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태양광 시대 준비하는 중동의 석유부국 카타르

2005년 교토의정서(기후온난화방지협약) 발효 이후 유럽이 친환경 산업을 주도해왔다. 선진국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이제는 유럽 대신 새로운 시장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천연자원을 내세운 신흥 부국과 개발도상국에 녹색 투자 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중동 지역이 대표적이다. 중동은 작열하는 태양, 시설물을 설치할 수 있는 광활한 땅, 풍부한 정부 재원이 맞물려 거대한 신재생 에너지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차세대 태양광 열풍 지역(hot spot)으로 중동을 꼽는 보고서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에미리트 태양광산업협회(ESIA)는 최근 발표한 '사막에서의 해돋이(Sunrise in the Desert)'라는 보고서에서 "태양광 전지 가격 폭락과 유가 상승으로 중동에서는 태양광 사업이 상업적으로 가격 경쟁력을 갖췄다"고 분석했다. 일사량(日射量)을 에너지로 환산하면, 중동 지역의 태양광 자원 총량은 미국의 2배에 달한다.

1조7000억달러 이상으로 추산되는 오일 펀드의 녹색 투자도 활발하다.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는 한국 자회사인 에쓰오일을 통해 지난해 한국실리콘의 지분 33.4%(2650억원)를 취득했다. 한국실리콘은 태양광 전지 재료인 폴리실리콘(빛을 전기에너지로 전환시키는물질)을 만드는 기업이다. 사우디 정부는 2020년까지 전체 전력의 10%를 태양광 발전을 통해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카타르도 태양광 붐으로 뜨겁다. 카타르 환경에너지연구기관은 지난해 12월 스페인 정부와 손잡고 차세대 태양광 에너지 연구개발에 들어갔다. 카타르 솔라테크놀러지는 1조원 규모의 폴리실리콘 공장 설립을 발표했다.

◇가난한 나라에서 풍력 날개를 돌려라

동남아·아프리카 등 국민소득 1000달러 이하의 가난한 나라도 녹색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제 원조 자금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리적 여건도 풍력·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 사업을 하기에 적합하다.

필리핀은 발전소에서 각 가정으로 전기를 보내주는 송배전 인프라가 취약해 만성적인 에너지 부족현상을 겪고 있다. 7107개 섬(島)으로 구성된 나라여서 전력망 구축이 어렵다. 필리핀 정부가 찾은 답은 100㎾ 이하 전력을 생산하는 소형 풍력 발전이다. 요즘 필리핀 정부는 소형 풍력 발전기를 설치할 해외 기업을 선정하는 중이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2015년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개발도상국 주민 100만명에게 전기를 보급하는 사업에 2억달러를 지원할 예정이다. 대부분은 신재생 에너지 사업에 투자된다. 이임택 한국풍력산업협회 회장은 "필리핀뿐만 아니라 네팔·스리랑카·인도네시아·방글라데시도 풍력 개발 사업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며 "중국 업체들이 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의 풍력 기업 지멘스는 유럽의 수요 급감으로 애를 태우다 올해 아프리카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이달 초 모로코 정부가 100메가와트(MW) 규모의 풍력발전 시설을 구축하기로 한 것이다. 아프리카 북부의 사하라 사막이나 몽골의 고비 사막은 거센 바람 덕분에 차세대 풍력 발전 단지로 유력하게 거론된다.

신흥 녹색 시장에 국내 기업이 진출하려면, 정부의 전략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조석 지식경제부 차관은 "개도국에 신재생에너지를 공급하려면 기업의 기술력이 기본이고 정부의 정교한 원조 계획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