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또 다른 나] 10년 동안 책 10권 써서 낸 SK브로드밴드 조성기(43) 팀장

지금 근무하고 있는 ㈜브로드밴드미디어(SK브로드밴드 계열)로 회사를 옮기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콘텐츠 기획과 애니메이션 제작 등의 일을 주로 했던 내가 어느 날 신규사업추진팀으로 배치됐다.

마치 '낯선 별'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고객까지 연결되는 인터넷 시스템을 이해해야 하고, 외부에 나가 영업을 하고, 각종 기관을 찾아다니는 업무에 나는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아마 그때쯤부터였던 것 같다. 주말이면 혼자 노트북을 붙들고 앉아 책을 쓰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몇 권의 책을 만드는 데 참여했지만, 본격적으로 저술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내 나름대로 집필이라는 창조적인 일에 몰두함으로써 업무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흥행의 법칙' '가격의 경제학' '아니메에서 일본을 만나다' 등 3권을 썼고, '처음부터 똑바로 말하라'를 번역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책 만들기'가 당시 내게는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 지금은 부서를 다시 옮겨 커뮤니케이션 디자인팀장을 맡고 있지만, 책을 쓰는 작업은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나는 30대 중반 이후 모두 10권의 책을 쓰거나 번역했다. 1994년 음악채널 'm.net'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한 나는 연예인들의 신변잡기를 다루는 프로그램보다는 어린이용 방송 콘텐츠가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해서 3년 만에 만화 채널인 '투니버스'로 회사를 옮겼다.

한때 직접 애니메이션 기획 회사를 운영해 본 적도 있다. 책과의 인연은 출판사를 하는 형 친구의 부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인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책을 번역하면서 맺어졌다. 이후 '피터팬과 함께 떠나는 신나는 판타지' '신기한 마법학교' 등 어린이 책을 몇 권 집필했고, 출판 기획에도 참여했다.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을 만들려면 활자 콘텐츠가 필요한데, 아동도서에 관심을 갖다가 직접 써본 것이었다.

내가 지금 쓰는 책들은 그때와는 많이 다르다. 요즘은 주로 직장에서 일하다가 생긴 의문을 푸는 과정에서 책이 만들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고객 가정에서 VOD(주문형 비디오) 한 편을 볼 때 가격은 얼마가 적정한가?

경쟁사가 가격을 내리면 우리 회사도 따라서 내려야 할까? 이런 궁금증을 갖다가 '도대체 가격을 어떻게 결정하지? 다른 업종은 어떻게 가격을 결정할까?'라는 짧은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케이스를 수집하게 됐다.

그 끝에 나온 것이 '가격의 경제학'(2009년)이라는 책이다. 왜 여자는 불필요한 2만원짜리 물건을 1만원에 사고, 남자는 필요한 1만원짜리 물건을 2만원에 사는지, 중국집 짜장면값과 짬뽕값은 왜 조금씩 차이가 나는지 등의 의문을 푸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내가 몸담고 있는 통신회사의 서비스 가격 결정 구조도 이해하게 됐다.

'흥행의 법칙'(2010년)은 VOD용 방송 프로그램 구매 업무를 맡고 있을 때 과연 잘 팔리는 콘텐츠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찾은 다양한 사례를 모아본 것이다.

물론 가격 결정 과정이나 흥행 법칙에 대한 책을 썼다고 해서 회사일을 더 잘하는 것은 아니다. 회사에는 현장에서 깨친 지식과 정보로 무장한 전문가들이 많다. 나는 업무를 통해 집필할 소재를 얻고, 이들 전문가의 조언도 듣는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직장인 작가'의 장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직장만큼 아이디어가 넘치는 곳은 없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생기는 그 무수한 아이디어를 흘려보내는 다른 사람들이 오히려 이해되지 않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메모를 하고 퇴근하면 컴퓨터에 메모를 옮기는 것은 나의 중요한 일과다.

그렇게 해서 모은 메모와 관련 도서의 독서를 토대로 집필은 업무에 방해를 받지 않도록 주말에 몰아서 한다. 나는 스스로를 '플레듀서'(플레이어+프로듀서)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무척 즐거운 놀이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노는 것이 곧 생산하는 시대가 되지 않을까.

주위 동료들 중에는 "돈도 많이 벌었겠네"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지만, 내가 써서 많이 팔린 책은 아쉽게도 아직까지 없다. 아직은 '무명작가'인 셈이다. 그동안은 원고를 다 쓰면 가장 비슷한 책을 최근에 냈던 출판사에 투고해서 책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얼마 전 처음으로 한 유명출판사에서 먼저 "책을 써 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과거 내가 기획에 참여했던 책 중에는 10만부를 넘긴 책도 있기 때문에 앞으로 내가 쓴 책 중에서도 잘 팔리는 책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