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그 정수가 뭐지요" "모두가 꽃으로 피어나는 것"

"그래서 답을 찾으셨나요?"

1일 아침, 서울 견지동 조계사 경내에 따뜻한 햇빛이 비췄다. 깊은 푸른색 눈을 가진 미국인 비구니 명법(明法·34) 스님은 대답 대신 보일 듯 말듯 웃었다. 전날 스님은 '구름과 물을 만남(Meeting Clouds & Water)'이라는 제목으로 조계사의 다른 스님·신도들과 함께 강연을 나눴다. 작년 10월 5일부터 한 달여 미국인 스승 활선(活禪·73) 스님 및 미국인 도반 3명과 함께 전국 20여곳의 사찰을 다닌 여행담이다. 처음 여행을 떠날 때 스님이 가슴에 품은 질문은 두 가지였다. "인간은 윤회의 바닷가에서 길을 잃은 존재. 어떻게 바다로 돌아갈 수 있을까?" "숨겨진 보석과 같은 한국 불교, 어디서 그 참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모두가 꽃으로 피어나는 것"

명법 스님은 수덕사 방장(方丈)을 지낸 선승(禪僧) 원담(圓潭·1927~2008) 스님의 미국인 상좌인 활선 스님을 만난 인연으로 21세 때 미시간 수덕선원(디트로이트 선 센터)으로 출가했다. 아침저녁으로 참선과 예불을 드리고 낮에는 일을 하는 수행자로 살아온 지 13년째다. 고교를 2년 월반해 17세에 마쳤고, 미시간대를 거쳐 영국 옥스퍼드대 인류학과를 졸업했다. 하지만 "스님 외엔 되고 싶은 것이 없었다"고 했다. 여행 출발 전날 스님은 조계사 주지 토진(土眞) 스님에게 "한국 불교의 정수(heart)는 무엇인지" 물었다. 토진 스님이 웃으며 답했다. "모두가 꽃으로 피어나는 것이지요." 당시 시월 국화 축제 중이었던 조계사는 '마법의 꽃 세계'였다. 피어오르는 향 연기 속에서, 꽃에 파묻힌 사람들은 아이도 어른도 모두 꽃 같았다.

◇"찻잎이 익으면 따다 덖을 뿐"

붉게 물든 단풍 사이로 부는 바람이 '마~음~' 하고 속삭이는 것 같던 장수 성관사를 걸었다. 고불총림 장성 백양사는 절집 전체가 걸작 예술품이었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 또 올라 도착한 운문암에선 암자 살림을 돌보는 한 보살님(여성 신도를 높여 부르는 말)이 차를 내오고 감을 깎았다. 암자 뒤편 바위 위에서 한 차례 좌선(坐禪)을 마친 뒤 스승이 말했다. "저 보살님의 정성을 유심히 살폈다면, 네가 가진 불교에 대한 질문 대부분에 대해 답을 얻었을 것이다." 지리산으로 가는 길, 넓고 푸른 들판 끝에서 만난 집은 주렁주렁 붉은 감이 달린 감나무를 품고 서 있었다. 그곳에서 차농사를 지어 사찰에 보내는 아주머니에게 "불교 공부는 어떻게 하시느냐"고 물었다. 아주머니는 답했다. "저는 그저 찻잎이 익으면 따다 덖을 뿐이지요." 스님은 "어쩌면 저 아주머니가 계신 곳이 극락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나는 아주 단순한 사람입니다"

승복 바지를 걷어 올리고 전북 부안 앞바다의 너른 해변을 걸었다. 뻘밭을 뒤져 봤지만 '숨겨진 보석'은 찾지 못했다. 대신 수많은 작은 게들이 발등을 간지럽혔다. 고창 선운사 도솔암을 거쳐, 우연히 다선사라는 작은 절에 들렀다. 스님 한 명이 홀로 양봉을 쳐 꿀을 따며 살고 있었다. 어떻게 수행하시느냐 묻자 그는 "나는 아주 단순한 사람"이라고 했다. "아침엔 일어나고, 일하고, 잠잡니다. 벌들과 나무가 내 도반입니다." 지리산 자락 하동 쌍계사와 양산 통도사 극락암을 거쳐, 명법 스님은 대구 동화사 부도암에서 동안거(冬安居)를 났다. 새벽 3시 예불 드리기 전, 처음 겪는 재래식 해우소에 들를 때면 신발을 빠뜨리지 않을까 늘 초조했다. "처음 한국 스님들과 안거를 나면서 내 속에 숨어 있던 이기심과 교만함을 새삼 발견했습니다. 중노릇 정말 제대로 해야겠다는 결심도 들었고요."

명법 스님은 지난해 초부터 조계사에 머물며 1년여간 외국인 템플스테이 지도를 맡았다. 5일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래서 윤회에 대한 해답을, 한국 불교의 숨겨진 보석을 찾으셨나요?" 스님이 말했다. "굽은 강줄기, 둥글둥글한 바위를 만났지요. 구름 위로 비탈길을 올라 산중 암자의 스님들을 만났고, 세상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어느 한 곳, 한 사람이 아닌 그 전체가 보석이고, 답이었던 것 같아요. 어쩌면 중요한 건 해답이 아니라, 끊임없는 질문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