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막, 그 맛 한번 숭악하더라"

남도 판소리에 '시김새'라는 표현이 있다. 삭힘새에서 온 말로 그 삭힘새는 또 '곰삭다'에서 왔다. 피를 석 동이는 쏟아야 하는 득음(得音)의 경지가 시김새인데, 음식과 판소리를 이어붙이면 바로 '곰삭은 소리'가 되는 셈이다.

전남 고흥 출신으로 줄곧 남도의 서정을 노래해온 시인 송수권(72) 전 순천대 교수가 시집 '남도의 밤 식탁'(도서출판 작가)을 펴냈다. '송수권의 우리 음식 시집'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80편의 시편들은 그가 지금까지 써온 음식 시를 한자리에 모은 것. 개별 요리보다는 음식문화를 소재로 한 서정시들이지만, 한국 현대시 100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일관성 있는 음식 시편이기도 하다. 곰삭은 음식과 시김새 붙은 삶이 그 안에 있다.

'벌교 참꼬막집에 갔어요/ 꼬막 정식을 시켰지요/ 꼬막회, 꼬막탕, 꼬막구이, 꼬막전/ 그리고 삶은 꼬막 한 접시가 올라왔어요/(중략)/그쪽 말로 그 맛 한 번 숭악하더라고요./ 비열한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런데도 남도시인-이 맛을 두고 그늘이 있다나 어쩐다나./ 그래서 그늘 있는 맛, 그늘 있는 소리, 그늘 있는 삶, 그늘 있는 사람,/ 그게 진짜 곰삭은 삶이래요./ 현대시란 책상물림으로 퍼즐게임 하는 거 아니래요./'('퉁' 중에서)

깊은 맛의 남도 표현인 숭악한 맛의 꼬막을 먹으며 시인은 곰삭은 시, 그늘 있는 시를 쓰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미국 앨라배마에서 온 미국인 친구와 찾은 곰소항 젓갈 백반집에서는 이 세상의 모든 젓갈을 예찬한다. '무젓, 멸젓, 고노리젓, 딘팽이젓, 곤쟁이젓, 엽삭젓, 모치젓, 새뱅이젓, 강다리젓, 홍애위젓'을 죽 열거하면서 '이 세상 모든 맛을 거시기 밥상에 모아두고 파는 갈무리집'('소금산-젓갈' 부분)이라 노래한다. 또 밀 수제비 고명을 떼어 넣고 보글보글 끓인 낙지국에 곁들여 꽃게무침을 먹으며 '뻘밭을 기는 것도 하려니와/ 꽃게란 놈은 모로 기는 비틀걸음에다/ 속창아리도 쓸개도 없이 눈을 치뜨고/ 거품을 뿜는 게 숭한 상것이란다'('무젓-꽃게 무침' 부분)라며 밀낙지국과 함께 놓인 꽃게를 정의한다. 시인에게 꽃게는 배알도 쓸개도 없는 무장공자(無腸公子), 옆으로 비틀걸음을 치기 때문에 횡횡거사(橫橫居士), 눈을 치뜨고 부라리는 천상목(天上目)인 것이다.

이 외에도 '아카시아 맑은 향이 아니라 밤꽃 흐드러진/ 페로몬 냄새 그보다는 뭉클한/ 이 질퍽한 뻘 내음 누가 아나요'라며 뻘물에 들어 있는 낙지를 노래하고, '이른 봄 무논에 물넘듯, 칼칼한 황새 목에 술 들어가네'라며 홍탁과 삼합을 찬양하는 것이다.

올해 탄생 100주년인 시인 백석(1912~1996)에게서 서북 정서를 아우르는 음식 시편을 만난다면, 송수권의 시편에서는 남도의 풍류와 풍취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