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불황에 렌털족 급증… TV·침대까지 빌려

5월에 결혼하는 예비 신부 오수연(28)씨는 신혼 살림에 필요한 TV와 냉장고·세탁기 등 가전제품을 빌려서 사용하기로 했다. 일시불로 사면 700만원 정도가 들어가는데, 오씨는 3년간 매달 23만8800원씩 내는 렌털 서비스를 선택한 것이다. 이자 비용을 포함해 3년 동안 내는 총비용은 850만원이 넘지만, 오씨는 우선 목돈을 아껴 전세 자금에 보태기로 했다.

유통업계의 렌털 비즈니스가 호황을 맞고 있다. 경기 불황에 서민들의 소비 패턴이 바뀐 덕분이다. 한 번에 목돈을 쓰는 쇼핑을 꺼리는 소비자들은 먼저 물건을 들여 놓고 매달 일정액의 사용료를 내는 방식을 선호한다. 렌털 비용 총액은 일시불로 사는 것보다 30% 정도 더 든다. 하지만 초기 부담이 적기 때문에 렌털을 선택하는 소비자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소비 패턴의 변화에 맞춰 기업들은 정수기나 비데 같은 전통적 렌털 상품 외에 가전 등 새로운 품목을 발굴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올 초에 가전제품 렌털 서비스를 시작한 이마트는 두 달 동안 총 3582건의 계약을 맺었다고 5일 밝혔다. 매출은 52억원. 서비스 시작 초기에 렌털 매출은 전체 가전제품 매출의 0.6%에 불과했지만, 최근엔 15% 수준까지 올라왔다.

렌털로 가장 많이 나가는 품목은 TV였다. 전체 렌털 서비스 계약자의 49%가 TV를 빌렸다. 냉장고(25%)가 뒤를 이었다. TV 렌털 이용자의 절반 이상이 46인치 이상 최신 LED(발광다이오드) 제품에 몰렸다. 냉장고는 얼음 제조나 정수기능이 있는 프리미엄 제품의 렌털 비율이 소형·중형·양문형 등 나머지 냉장고 전체 렌털보다 8배나 많았다. 이마트 장중호 상무는 "고급 가전제품을 일시불로 사기 부담스러워하던 소비자들이 초기 '구매 장벽'이 낮은 렌털 서비스에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TV홈쇼핑 방송에도 렌털 서비스가 등장했다. GS샵은 1주일에 렌털 서비스 상품을 3회가량 방송한다. 일시불로 200만원이 넘는 안마의자의 경우 월 5만~6만원을 내고 사용할 수 있다. GS샵 관계자는 "안마의자는 한번 방송에 주문이 400건 넘게 쏟아질 정도로 인기"라고 말했다. PC도 월 2만~3만원을 내고 렌털로 쓸 수 있다.

정수기 렌털시장 1위 업체 웅진코웨이도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이 회사는 작년 10월 침대 매트리스를 빌려주는 사업을 시작해 5개월 만에 1만5000여개를 판매했다. 웅진코웨이 관계자는 "침대는 대형 가구지만, 소비자들이 정기적인 관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상품"이라며 "4개월마다 매트리스 오염도를 측정하고 살균작업을 제공한 것이 인기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정수기나 공기청정기 등 전통적인 렌털 제품도 사용자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교원L&C는 "지난해 특별한 신상품 출시가 없었는데도 정수기 등을 빌려쓰는 렌털 계정 수는 16%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 회사 매출은 전년 대비 12%가 늘어 1100억원을 기록했다.

유통업계는 요즘 같은 불경기에도 고가의 프리미엄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렌털 서비스에 주목하고 있다. GS샵 신진호 팀장은 "고객 입장에선 초기 부담을 줄이면서도 지속적인 관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제품 중심으로 렌털 서비스 이용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