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 빈곤층 60만가구(옥탑방·반지하 거주)… 임대주택 제공보다 주택 바우처(임대료 보조)가 효과적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복지논쟁이 뜨겁다. 복지논쟁에서 빠질 수 없는 게 주거(住居) 빈곤 문제이다. 주거 빈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국가들은 국민들에게 인간다운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주거서비스를 보장하는 것을 정부의 의무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복지 공방을 벌이는 무상시리즈(무상급식·보육·의료)에는 주거 빈곤 문제가 빠져 있다. 주택법상 최저주거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열악한 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는지는 관심 밖이다. 예를 들어 부부와 6세 이상의 자녀가 1명 있을 경우, 2개의 침실에 부엌 겸 식사용 공간이 구비돼 있어야 하고, 적절한 방음과 환기, 채광, 난방설비 등을 갖춰야 한다고 주택법이 규정하고 있지만 이런 집에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적지 않다.

정부는 주거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정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주거비도 버거운 빈곤층에겐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50만~60만 가구에 달하는 주거 빈곤층

주택법상 최저주거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집에 살거나, 최저주거기준을 갖춘 집에서 살더라도 임대료 등 주거비 부담이 큰 계층을 '주거빈곤층'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주거환경이 매우 열악한 곳에 살고 있으면서 주거비 부담이 생계에 곤란을 줄 정도로 허덕이는 계층을 '주거의 절대적 빈곤층'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주거빈곤층은 약 50만~60만 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주거환경이 매우 열악한 지하나 반(半)지하, 또는 옥탑방에 거주하는 가구가 전체 가구의 3.3%인 57만 가구에 이른다.

이들 중 대략 30만∼40만 가구는 임대료 부담이 자기 소득의 30% 수준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거환경이 열악한 데 그치지 않고 소득에서 차지하는 임대료 비중이 커서 먹고 입는 기본적인 생활조차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을 주거의 절대적 빈곤층이라고 부를 수 있다. 주거빈곤층 가운데 나머지 20만∼30만 가구는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서 그럭저럭 임대료를 내며 어느 정도 소비를 하고 살지만, 더 나은 집으로 옮기려 할 경우엔 임대료 부담 때문에 탈출하지 못하는 계층이다. '주거의 상대적 빈곤층'이라고 할 수 있다.

주거 빈곤층 규모는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더 커질 수 있다. 지난해 국토해양부가 발표한 2010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는 전체 가구의 10.6%에 해당하는 184만 가구에 달한다.

◇주거빈곤 해결책…공공임대주택 공급과 임대료 보조

주거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여러 가지 정책이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공공임대주택 공급정책과 임대료 보조정책이다. 공공임대주택 공급정책은 입주자에게 양호한 주거환경을 제공하지만, 초기에 상당한 규모의 재원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공공임대주택을 유지·관리하는 데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든다. 임차인(賃借人)은 물론이고 임대인(賃貸人)인 공공기관조차 주택을 잘 관리할 인센티브가 없어 노후화가 빨리 진행되고 보수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임차인의 주거이동이 제약된다는 점과 사회적 낙인 그리고 주거 빈곤층 간 정부지원의 형평성 문제도 공공임대주택 공급정책의 부작용이다. 예를 들어 임차인은 공공임대주택이 있는 지역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주거 이동에 상당히 제약을 받게 된다. 그리고 공공임대주택에 사는 것만으로 사회적 낙오자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한 가구만 정부지원의 혜택을 받는다는 것이다. 주거 빈곤층임에도 불구하고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지 못하면 정부로부터 주거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임대료 보조정책은 공공임대주택 공급정책의 문제점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임대료 보조정책의 대표적인 수단이 바로 주택 바우처 제도이다. 주택 바우처 제도란 자기소득의 일정 수준(보통은 25~30%)을 넘는 임대료에 대해서는 그 차액을 정부가 바우처(교환권)로 보조해 주는 것을 말한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임차인은 자신이 살 주택을 스스로 결정하기 때문에 공공임대주택 공급정책에서 나타나는 주거이동의 제약 문제가 없다. 또 자신이 주거지를 결정하다 보면 여러 계층과 자연스럽게 섞여 살 수 있기 때문에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사회적 낙오자라는 낙인이 찍힐 염려도 없다. 그리고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지 못한 사람이라도 주거비를 보조받기 때문에 정부지원의 형평성 문제도 상대적으로 작다.

그러나 주택 바우처 제도는 단기적으로 임대료를 상승시키는 부작용이 있다. 바우처를 이용해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임대료가 오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재정지출이 예상보다 더 커질 수 있고, 임대인만 좋은 일 시킨다는 비난에 시달릴 가능성도 있다. 또 임대인과 임차인이 담합해 부당하게 임대료를 높인 뒤, 바우처 지급을 요청하는 도덕적 해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주택 바우처 도입해 주거빈곤층 사각지대 없애야

우리나라는 주로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통해 주거 빈곤층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공공임대주택 입주자에만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에 이곳에 입주하지 못한 주거 빈곤층은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서울시가 주택바우처 제도를 도입했지만 미미한 수준이다.

저소득층인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급되는 최저생계비에 주거비 급여가 포함돼 있지만 주거상황이나 임대료 수준에 관계없이 일괄적으로 지원되는 돈이기 때문에 주거 빈곤층에게는 주거 빈곤을 탈출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이 되지 못한다. 이 밖에 저리(低利)의 전세자금 융자나 월세 지급액에 대한 소득공제와 같은 지원이 있지만, 면세점 이하가 대부분인 주거 빈곤층들에게는 지원 효과가 크지 않다.

이런 점을 종합해 볼 때 임대료 보조정책인 주택 바우처 제도를 전면 도입할 필요가 있다. 더군다나 공공임대주택이 갖고 있는 비(非)효율성을 감안한다면, 주택 바우처 제도의 도입은 불가피해 보인다.

☞ 주택 바우처 제도(Housing Voucher Program)

저소득층의 주거생활 안정을 위해 정부에서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말한다. 자기 소득의 일정수준을 넘는 임대료에 대해 그 차액을 정부가 쿠폰 형태의 바우처(교환권)로 지급한다. 미국·유럽 등 서구에서 보편적으로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