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하야…" 변사 조희봉은 맛깔나다

―옛 변사들은 영화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지금 내가 하는 변사도 해설자뿐 아니라 '엔터테이너'의 성격이 있다. 현대적 상황에 맞는 해설이나 웃음을 자아내는 대사를 넣어 관객이 집중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여주인공이 아버지 빚 때문에 팔려가는 부분에서는 '제1·2 금융권에서 외면당하고 대부업체에 손을 벌려…'와 같은 해설을 한다. 여자 여러 명이 인사를 나누는 장면에서 너댓명의 목소리를 연기한 뒤에는 '그런데 목소리가 다 똑같네요?'와 같은 대사를 넣어 웃음을 유도한다."

―옛 변사의 말투를 그대로 흉내 내나.

"남아 있는 변사들의 음성을 참고하지만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은 아니다. 옛날 말투를 그대로 베끼기보다는 해설과 대사를 관객이 음악처럼 느낄 수 있도록 리듬감을 주려고 한다."

―한때 회사원이 되려고 했다던데.

"대학(서강대) 전공이 경제학이다. '공부 못해서 연기한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 대학 때 공부도 열심히 했다. 무역상사 세일즈맨이 되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연기에 비해) 그쪽은 고민이나 준비가 부족했다."

―조연을 많이 했다. 주연 욕심은 없나.

"'명품 조연'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연기를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박지성 선수가 '유명해지고 싶지는 않은데 축구는 더 잘하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여기에 공감한다. 주연을 맡아 유명해지는 것보다는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지난달 열린 제84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최대 화제는 작품상 등 5개 부문을 휩쓴 흑백·무성영화 '아티스트'였다. 대사 없는 흑백 영화가 현란한 특수효과와 최첨단 3D 기술을 앞세운 작품들을 제치며 이변을 연출했다.

아티스트는 배경이 과거일 뿐 현대에 일부러 흑백·무성으로 만든 작품이지만, 한국에서는 1930년대에 만들어진 '진짜' 흑백·무성영화가 최근 재조명되고 있다. 2008년 원본 필름이 발견돼 지난달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청춘의 십자로(1934년작·감독 안종화)'다. 시골 젊은이들이 경성에 올라와 겪는 부적절한 남녀관계 등을 그린 이 영화는 현존하는 한국 최고(最古)의 영화다. 1935년 한국 최초의 유성영화인 '춘향전'이 나오기 전 무성(無聲) 시대에 제작돼 지금까지 필름이 남아 있는 유일한 무성영화이기도 하다.

한국영상자료원(원장 이병훈)은 이 영화의 등록문화재 지정을 기념해 7일 오후 4시, 8일 오후 3시, 7시에 서울 상암동 자료원 내 시네마테크에서 무료 상영회를 연다. 1930년대 당시의 영화 상영 방식에 최대한 가깝게 변사(辯士)도 등장한다. 변사는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추노', 영화 '러브픽션' '범죄의 재구성' 등에서 '명품 조연'이라는 별명을 얻은 배우 조희봉(41)이 맡는다. 6일 시네마테크에서 조희봉을 만났다. 그는 "변사는 단지 영화 해설자가 아니라 작품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역할"이라고 했다.

―변사 전문 배우라고들 한다.

"2008년 이 영화가 발견돼 상영할 때 처음 변사를 하고 또 하는 것이다. 4년 전에는 당시 상영회 연출을 맡은 김태용 감독이 전화해 '재밌게 놀 기회가 생겼는데 같이 한번 해보자'고 하더라. 무슨 일인지 모르고 나갔는데, 가장 오래된 우리 영화를 상영하는 엄청난 일이었다."

―무성영화라 대사가 없는데 대본은 어떻게 마련했나.

"영화를 한 장면씩 끊어 보면서 이야기 흐름에 맞춰 대사를 써 나갔다. 같은 장면을 몇 번씩 돌려 보고, 김 감독과 토론도 하다 보면 10초 분량의 대사를 쓰는 데 1시간이 걸릴 때도 있었다."

―노래 공연도 있다는데.

"변사와 밴드, 배우가 스크린 아래 무대에 올라간다. 밴드가 중간중간 곡을 연주하고, 2명의 (뮤지컬) 배우는 중요한 장면에서 남·녀 주인공의 감정을 노래로 표현한다. 해설과 나머지 대사는 변사의 몫이다. 옛 신문기사 등을 보며 당시의 상영 방식을 최대한 재현하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