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신문화의 탄생’] [19] 새해 첫날 꾀꼬리 소리 생방송하려다 30분을 "……"

1933년 5월 29일 정오 무렵, 라디오로 경성방송을 듣던 수많은 사람들은 호남 여성 명창 김남수(金南洙)가 이상할 만큼 구슬픈 목청으로 토해내는 '개고리 타령'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바로 앞 순서에서 '흥타령'을 "장고 장단에 늠실늠실 구비처럼" 넘어가며 흥겹게 뽑아냈던 것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이유가 있었다. 생방송으로 열창하던 그녀에게 어머니 임종이 임박했다는 전화가 걸려왔기 때문이었다. "즉각으로 안색이 변한" 김남수는 잠시 말을 잃었으나 "허지요!"라는 소리와 함께 다시 마이크 앞으로 다가갔고, "운명하는 어머님의 마즈막 장면을 보는 듯 눈에 그리면서 부른 그의 개고리 타령은 팔도강산을 흐를대로 흘러 라듸오 나발 속으로 토해 나왔든 것"이었다. 조선일보는 이 사건을 '여(女)명창의 단장(斷腸)방송'이라는 제목으로 사회면에 크게 보도했다.(1933년 5월 31일자)

1927년 정규방송 개시 이후 생방송으로 라디오 프로그램이 이어지며 크고 작은 사고와 해프닝이 많았다. 그래도 "몇백 몇천 리를 격한 곳에 흔적없이 전파되는 방송 무선전화의 신기막측한 비밀"(1924년 12월 17일자)은 사람들을 사로잡았고, 방송국은 세상 온갖 소리를 전파에 실어보려고 궁리했다. 1927년 일본 오사카 방송국이 심장박동 소리, 태아가 엄마 뱃속에서 노는 소리 등을 방송하자, 경성방송도 부산항에서 '관부(關釜)연락선에 사람들이 타는 실황'이나 '경성제국대학 외과교실의 수술 실황'까지 중계 방송했다.(1927년 2월 15일자) 1936년 6월 26일엔 서울 시내 수송보통학교 교실의 수업 내용을 학부형들이 들으라며 30분간 전국에 생중계하기도 했다.(1936년 6월 15일자)

새소리는 초창기 라디오가 탐내던 소재였다. 1928년 1월 1일 아침 경성방송이 꾀꼬리 울음을 생방송하려다 30분간 침묵이 흐른 방송사고는 방송사에 남았다. 새해 아침을 낭랑한 새소리로 열겠다는 생각에 스튜디오로 꾀꼬리 3마리를 데려와 "지금부터 꾀꼬리의 첫 울음을 방송해 드리겠습니다"라는 안내와 함께 마이크 앞에 풀어놓았으나 아무리 애를 써도 울지 않은 것이다. 미련을 못 버린 경성방송은 1929년 1월 1일 정오에 꾀꼬리를 6마리나 동원했지만 또 허탕을 쳤다.(이내수 '이야기 방송사 1924~1948')

1930년 4월 일본 동경방송국은 새를 방송국에 데려오는 대신, 우에노(上野)동물원 새 우리에 최초로 마이크를 설치하고 5일간 저녁마다 '새의 교향악'을 중계방송했다.(1930년 4월 8일자) 이에 자극받은 듯 1933년 12월 경성방송은 "(새의) 보금자리 엽헤 마이크를 장치"해 놓고는 엄마새와 아기새가 지저귀는 '새의 가정 생활'을 방송했다.(1933년 12월 15일자)

라디오 방송을 엉뚱한 곳에 '응용'한 사람들도 일찌감치 등장했다. 경마 실황 생중계 방송을 들으며 "집에 안저서 돈을 걸고 도박을 하는" 경마(競馬) 도박이 1934년 등장하자, 경찰이 엄중단속에 나섰다. 라디오를 가질 만큼 부유한 사람들이 벌인 추태였기에 조선일보는 "못하는 짓 업는 유한 계급들"이라는 제목을 달아 꾸짖었다. (1934년 4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