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학군' 서울 서초동 엄마가 남산초교에 아이 보내는 건…

7일 오전 7시쯤 경기도 판교에 사는 고재선(46)씨와 딸 황보경(8)양은 광역버스에 함께 몸을 실었다. 고씨는 출근, 보경양은 등교하는 길. 모녀는 1시간쯤 뒤 서울 중구 남산동 2가 남산초등학교에 도착했다. "오늘도 즐겁게 파이팅!" 구호를 함께 외치고,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딸을 확인한 고씨는 명동 사무실로 향했다.

저출산과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미니 초등학교' 신세가 된 남산초교에 지난해부터 '직장맘'의 아이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충무로 SC스탠다드캐피탈에 다니는 정재은(38)씨도 집 근처인 분당 학교가 아닌 이 초등학교에 아들을 입학시켰다. 교육 여건은 분당이 더 좋지만, 학교가 오후 3시면 끝나 그 뒤 아들 혼자 학원에 다녀야 하는 게 문제였다. "직장 바로 옆이라 좋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가 5분이면 달려갈 수 있잖아요. 학교에서 퇴근할 때까지 맡아주니 마음도 편하고요."

이는 모두 남산초교 '마케팅' 덕분이다. 전교생이 230명에 불과하고 학급 수도 12개로 한 학년당 2개인 미니 학교인 이곳은 한 학급당 학생 수가 20명이 채 안 돼 폐교 위기에 놓이자 선생님들이 명동 주변을 돌며 직접 학교를 홍보하기 시작했다. 교장 최미경(57)씨는 명동직능단체협의회 회의장에 찾아가 "학교 소개를 위해 2분만 시간을 주십시오" 하고 부탁했다. 특히 퇴근이 늦은 부모를 위해 오후 9시까지 아이들을 관리, 사실상 보육 기능을 하는 '돌보미 교실'을 강조하면서 직장맘들 마음이 움직였다. 이런 열성에 감동한 한 학부모가 명문 사립 L초교에 다니던 아들을 전학시키는가 하면, '8학군'인 서울 서초동에서도 학생이 오기 시작했다. 올해 신입생 32명 중 12명이 다른 곳에서 왔다. 만족도도 상당히 높다. 학급당 인원이 16~17명이어서 교사들의 세심한 개별 지도가 이뤄진다. 방과 후 학습 프로그램 18개 중엔 발레, 창의력 향상 교실뿐 아니라 바둑·주산 등도 있다. 이 방과 후 학습 프로그램 수강료는 1개당 3개월에 6만~7만5000원 수준이다.

남산초교뿐 아니다. 중구에 있는 다른 '미니 학교'도 최근 변화하기 시작했다. 장충동 충무초교도 맞벌이 부부에게 특화된 학교 운영으로 직장맘 아이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올해 신입생 40명 중 10명이 소문을 듣고 온 인근 병원 간호사, 회사원 자녀이다. 정동 덕수초교는 특화된 프로그램으로 외부 학생 유치에 성공했다. 전교생이 주 1회 수영을 배우는데, 이렇게 익힌 실력으로 매년 7월쯤 한강을 수영으로 건너는 행사를 갖는데 이런 점이 일부 학부모 눈에 들었다.

구청 지원도 뒤따랐다. 중구는 2007년부터 구내 9개 공립학교 6학년생 전원을 서울영어마을에 보내주고, 올해는 5학년생도 포함했다. 또 6개 초등학교에 온종일 돌봄 교실 운영비 1억2500만원을 지원해 맞벌이 부부 자녀 유치에 애를 쓰고 있다.

초등학교 학생은 기본적으로 각 동을 기준으로 공립학교에 배치되는 것이 원칙이나 "직장 때문에 아이를 인근 학교에 입학시키고 싶다"는 등의 이유로 입학 신청을 내 승인되면 다른 지역 학교에도 다닐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