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모, 또 사랑에 전부를 걸다

미당(未堂) 서정주는 시 '자화상'에서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간다"고 했다. 곽경택·유하·송해성 같은 감독들은 배우 주진모(38)의 얼굴에서 '지독한 사랑을 하는 남자'를 읽어냈다. 물론 대상은 달랐다. 첫사랑 여인(사랑·2007)이거나, 호위무사(쌍화점·2008)나 동생(무적자·2010)이었다.

오는 15일 개봉하는 영화 '가비(加比·커피를 한자로 표현한 옛말)'의 장윤현 감독도 주진모를 놓고 비슷한 독해를 했다. 주진모는 아관파천(1896년) 때 고종을 커피로 암살하려는 음모를 다룬 이 영화에서 주인공 '일리치'를 연기했다. 사랑하는 여인 따냐(김소연)를 위해 조국도, 목숨도 내던지는 그런 인물이다. 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또 '사랑에 전부를 거는 남자' 역할이다.

"내가 제일 잘하는 게 그런 것인가 보다. 감독님들이 '너는 겉은 세지만 안은 여리고 순하다. 그걸 뽑아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렇게 나온 캐릭터들이 많이 겹치는 것 같다."

―캐릭터가 겹치는데도 이번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커피를 좋아해 '정관헌(靜觀軒)'이라는 궁궐 카페를 지은 고종을 다룬다는 게 새로웠다. 처음에는 고종을 연기하고 싶었지만 이미 쌍화점에서 왕을 해봤기 때문에 일리치를 맡았다."

―일리치는 어떤 인물인가.

"겉으로는 강인하지만 내면은 나약하다. 초기 시나리오에선 한없이 착한 인물이었지만, 제작 과정에서 다른 인물과의 대립구도가 들어갔다. "

―장윤현 감독은 "주진모가 영화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말한다.

"사실 시나리오상에서는 일리치랑 관련된 많은 부분이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감독님이 내게 일리치라는 인물과 주변 인물의 관계를 직접 만들어보라고 하셨다. 배우로서 연기도 부담스러운데, 연출자처럼 다른 인물과의 관계나 대사 등을 고민해야 했다. 끝나고 나선 '큰 공부했다'고 느꼈지만, 이런 작업을 또 하라면 절대 못할 것 같다."

―투자 유치 등 제작 과정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들었다. 어떤 심정이었나.

"간식으로 피자를 먹던 아이가 어느 날 어묵도 하나 없는 떡볶이를 먹게 된 거랑 비슷하다. 성에는 안 차도 부모가 얼마나 힘든지 알면 음식 투정을 할 수 있겠나. 배우도 제작 환경이 어려울 때는 어깨에서 힘 빼고 함께 고생하는 거다."

―주변에서 '인간 주진모'를 어떻게 평가하나.

"크게 두 가지다. 작품으로만 나를 보신 분들은 딱딱하고 다가서기 힘들다고 말하신다. 하지만 일상에서 저를 보시는 분들은 '개그맨 같다'고들 하신다."

―그 중저음 목소리로 재밌는 얘기를 쏟아낸다는 게 상상이 안 된다.

"먼저 나서서 수다를 떠는 편은 아니다. 내 유머는 그때그때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스타일이다. 술자리에서 만나면 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데뷔 때부터 주진모의 초점은 외모였다.

"아직도 관객들은 나를 외모 위주로 보신다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배우는 얼굴만으로는 할 수 없고, 그 안에 때를 묻히고 색깔을 입혀야 한다. 내가 지금 20대 파릇파릇한 미남 배우들과 얼굴로 경쟁할 수는 없다. 나는 지금 나만의 색깔과 때를 만들고 있다."

―작품을 1년에 1편 정도만 한다. 이렇게 과작(寡作)인 이유가 있나.

"특별한 이유는 없다. 한 작품 끝나고 다른 작품이 빨리 안 들어와서 그런 거다. 주진모가 시나리오 기다린다고 소문 좀 내달라.(웃음)"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가.

"지금까지의 작품 속 주진모는 멋있기는 해도 현실적이지 않았다. 이제는 달라지고 싶다. '우리 동네 사는 어떤 오빠랑 똑같네' '내가 아는 형이랑 비슷하잖아'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그런 역할을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