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해진 분양가 상한제… 사실상 폐지?

2007년 9월 도입된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가 정부의 계속된 규제 완화와 경기 침체 여파로 도입 5년 만에 유명무실해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2009년 2월 국회에 제출된 상한제 폐지법안은 3년 넘게 표류하다가 18대 국회가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있어 자동 폐기될 운명을 맞게 됐다.

국토해양부는 9일부터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관련 규정을 일부 바꿔 시행할 계획이다. 정부는 2009년 이후 상한제 규정을 매년 1~2회씩 줄기차게 완화해 왔다. 국토부 유성용 주택정책과장은 "정부 입장은 기본적으로 상한제 폐지"라며 "이번 조치로 분양가 상한제와 관련해 풀 수 있는 규제는 사실상 거의 다 풀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현재 아파트 분양가는 정부가 고시하는 기본형 건축비에 택지비를 더하고 일부 가산비용을 합쳐 산출하도록 돼 있다. 정부는 이번에 택지비의 경우 건설사가 선납한 공공택지 대금에 대한 이자를 기존 6~12개월까지만 가산비용으로 인정해 오던 것과 달리 앞으로 택지비 비중이 전체 분양가의 40%를 넘으면 가산기간을 14개월까지 연장해주기로 했다. 이자도 조금 더 높게 계산해 건설사 입장에서는 분양가를 지금보다 최대 2%쯤 더 받을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최근 아파트에 많이 설치되는 유비쿼터스시설과 신재생에너지 설비도 건축비 가산 항목에 추가되고, 고령자와 장애인을 위한 시설 설치비도 가산비로 인정해준다. 붙박이장은 플러스옵션으로 추가해 건설사가 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정부가 2009년 이후 분양가 상한제 폐지를 추진한 이유는 주택 공급이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7년 30만가구를 넘었던 아파트 신규 분양물량은 이듬해 23만가구로 줄어든 뒤 2010년엔 17만가구까지 급감했다.

건설업계도 분양가 상한제가 이제는 큰 의미가 없다고 보고 있다. 주택시장이 장기 침체를 겪으면서 상한제로 굳이 가격을 통제하지 않아도 업체 스스로 가격을 줄줄이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상한제 때문이 아니라 집이 팔리지 않아 분양가를 올리고 싶어도 올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파트 분양가는 2008년 이후 줄곧 떨어지고 있다. 2008년 3.3㎡당 1100만원에 달했던 전국 아파트 평균 분양가는 지난해 800만원대로 주저앉았다.

최근 인천 송도신도시에서 분양한 아파트들은 85㎡형이 3.3㎡당 1100만~1200만원으로 1년 전보다 100만원 이상 내렸다. 내외주건 김신조 사장은 "상한제는 집값이 오르는 시기에 가격 상승을 막는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도 "경기 침체기에는 상한제를 유지할 실익이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 중인 분양가 상한제 폐지는 물 건너 갈 수도 있는 상황이다. 2009년 2월 상한제 폐지 법안이 국회에 상정됐지만 3년여를 표류하면서 결국 18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될 상황에 놓여 있다. 야당과 일부 여당 의원들이 "집값이 다시 오를 가능성이 있다"며 법안 심사를 계속 거부한 탓이다. 정부는 상한제 폐지를 다음 국회에서라도 계속 추진하겠다는 뜻을 보이고 있지만 실현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 분양가 상한제

국토해양부 장관이 정하는 표준건축비에 택지비를 더해 아파트 분양가격을 정하는 제도다. 1977년 처음 도입된 이후 1999년 전면 폐지됐다가 2005년 부동산 가격이 뛰자 ‘8·31 부동산대책’의 후속 조치로 부활했다. 현 정부는 부동산 경기 침체를 이유로 상한제 폐지를 추진하고 있지만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 반대로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