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랜드 주식 매각… 큰손들 투자 저울질

"지난주까지만 해도 열기가 뜨거워 예약 금액이 100억원은 거뜬히 넘겼는데, 상장 보류 뉴스가 나오자마자 손님이 절반으로 줄어버렸네요."(A증권사 신탁팀장)

8일 한국장학재단 에버랜드의 주식 매각 예비입찰이 시작된 가운데, 매각 흥행 여부를 놓고 증권가가 설왕설래하고 있다.

에버랜드는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의 순환출자구조를 갖고 있는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위치하는 회사여서 한국장학재단의 에버랜드 지분 10만6149주(4.25%) 매각은 증권가에서 뜨거운 관심사였다.

재단의 지분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막내딸인 고(故) 이윤형씨가 갖고 있던 것으로, 지난 2006년 삼성그룹이 8000억원 규모의 사회 헌납을 발표한 뒤 교육부에 기부했고, 교육부가 한국장학재단에 넘긴 것이다.한국장학재단은 정부 장학사업을 하는 교육부 산하 기관이며, 에버랜드 주식을 현금화해 장학재원으로 쓰기 위해 주식 매각을 추진해 왔다.

그런데 7일 삼성그룹이 "삼성에버랜드의 상장 계획은 상당 기간 없다"고 밝혀 매각 진행에 찬물을 끼얹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삼성이 주식 유동화 계획이 없다고 공식화하면서 잔치에 재를 뿌렸다"면서 "물건을 비싸게 팔아야 하는 재단 측은 난데없는 삼성 측 발표에 속이 탈것"이라고 말했다.

에버랜드 주식은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을 비롯, 삼성계열사나 삼성 가문이 대부분 소유하고 있다. 시중에 유통되는 물량은 거의 없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삼성카드가 에버랜드 지분 17%를 KCC에 주당 182만원에 팔면서 처음 외부 기관이 주주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장학재단 역시 KCC처럼 주식을 한꺼번에 살 수 있는 기관을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환금성이 불확실한 데다 그 정도 주식으로 경영권을 확보할 수도 없다는 점 때문에 마땅한 매수자를 찾는 것이 어려웠다. 삼성카드의 주식 매각 가격인 주당 182만원이 낙찰 가격이 된다면 한국장학재단이 팔아야 할 4.25%의 지분 가치는 1931억원에 이른다. 한국장학재단은 또 이번 입찰에 삼성그룹이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삼성이 헌납한 주식을 다시 삼성에 넘기는 건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결국 매각 증권사인 동양증권은 기관과 개인들을 대상으로 경쟁 입찰하는 방식을 고안해 냈다. 최소 입찰 수량은 5000주로 정했다. 주당 182만원일 경우 91억원에 이르러 개인들이 입찰에 참여하기엔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그래서 동양증권은 입찰에 참여한 금융회사가 5000주를 산 뒤 이를 소액투자자들을 상대로 신탁이나 펀드로 쪼개어 팔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동양증권 관계자는 "다른 증권사들이 신탁이나 펀드 형태로 판매할 계획인데 최소 1억원 이상은 투자해야 할 것"이라면서 "삼성 측이 상장 계획이 당분간 없다고 해 중도 환매가 막혀 있기 때문에 장기로 투자할 수 있는 자산가들을 주공략 대상으로 삼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