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의 여인

대처 스타일
박지향 지음｜김영사｜335쪽｜1만4000원

"칼리굴라의 눈과 매릴린 먼로의 입술을 가진 여자."(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

"(솔직히) 나도 대처를 닮고 싶다."(노동당 출신인 블레어 전 영국 총리)

11년 반 집권 내내 별명이 티나(TINA)였다. '이 길밖에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의 머리글자. '영국병'을 고치기 위한 고강도 개혁 처방에 여론이 들끓자 동요하는 정치권을 향해 "유턴? 하고 싶으면 당신들이나 하라"고 쏘아붙였던 여걸 마거릿 대처.

지금은 87세 노환으로 두문불출이지만 그녀는 여전히 '뜨거운 상징'이다. '포퓰리즘에 맞선 철의 여인' 아니면 '신자유주의 광풍의 마녀'로 평가도 엇갈린다. 하지만 한 가지에는 일치한다. '그녀는 담대했다(She has guts)'.

이 '철의 여인'이 영화로 환생한 즈음 때맞춰 그녀를 집중 해부한 책이 나왔다. 5년 전 초판이 나왔지만 조용히 묻혔던 것을 업데이트해 재출간했다.

1984년 4월 영국 광부 노조가 파업을 시작했을 때, 이 책의 저자인 박지향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사진>는 31세. 런던에서 박사 논문 자료를 수집 중이었다. 당시 많은 지식인이 그랬듯, 그도 에릭 홉스봄 같은 좌파 지식인 쪽이었다. 대처는 증오의 대상이었다. 광부 노조에 소액 후원금도 보냈다. 1년 파업 끝에 노조가 참패하자 분노의 눈물까지 흘렸다. 상심한 박 교수를 홉스봄 교수가 이렇게 달랬다. "1970년대에 영국에 있었으면 이해가 갈 거다. 노조의 무소불위 파업에 국민이 얼마나 염증을 느꼈는지…." 철들고 생각하니 그때처럼 어리석은 때도 없었다는 게 저자의 고백. 뒤늦은 깨달음이 책을 쓰게 했다.

―5년 전 책을 다시 낸 이유는.

"그때도 대선을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유력 후보 캠프에서 책 얘기를 듣고 출간 시기를 앞당길 수 없겠느냐고 했다. 경선 직전에 '철의 여인'을 슬로건으로 쓰고 싶었던 거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게 싫어 출간을 2007년 9월로 늦췄다. 그때는 후보 경선이 끝나고 대선 열기가 뜨거울 때였다. 책은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아쉬웠다. 다시 선거를 앞둔 지금 여전히 대처 리더십은 유효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왜 지금 대처인가.

"전통적 의미의 리더십이 뭔지 보여준 지도자였다. 당장 입에 쓰더라도 옳은 것은 옳다고 했다. 대중이 싫어할 만한 것도 내세우고 설득하고 추진했다. 모든 사람이 동의하지는 않았다. 치를 떠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설득하고 밀고 나갔다. 나중에 영국인들이 그러더라. '대처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존경한다'고. 우리 눈에 그런 정치인이 보이나. 복지 담론이 난무하는 지금 '자신의 삶에 책임지는 독립적인 개인'을 앞세운 그녀의 처방은 여전히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복지는 시대적 화두 아닌가.

"서구에서도 폐기한 방식의 복지를 재탕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요즘은 웰페어(welfare)가 아니라 워크페어(workfare) 시대다. 생산적 복지, 일하는 복지다. 케인즈식 복지국가가 아니라 슘페터식 복지국가, 유지 가능한 복지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최근 여론조사 추이를 봐도 영국 국민 다수가 보편적 복지에는 회의적이다. 80년대에 이념적으로 양극화했다가 90년대 오면서 보수당은 좌로 노동당은 상당히 우로 오면서 복지 문제에도 절충이 이뤄진 것이다."

잡화상 딸에서 최고의 총리로…

―1925년 잉글랜드 소도시 잡화상 둘째 딸(마거릿 로버츠)로 출생.
―1943년 장학금 받고 옥스퍼드대 진학.
―1959년 보수당 선거구 공천 심사에서 150명 후보 중 낙점, 이듬해 당선.
―1973년 보수당 사상 첫 여성 대표 취임.
―1979년 총선 승리, 영국 사상 첫 여성 총리 취임.
―1982년 포클랜드전쟁 승리.
―1984년 탄광노조 총파업 강경대응 제압.
―총선 연속 3회 승리, 11년 반 장기 집권.
―1990년 파리 유럽공동체회의 참석 중 당내 반란 직면, 자진 사퇴.
―2002년 영국 의회에서 생존 인물로는 처음으로 동상 제작 설치.
―2006년 영국 GDP 세계 4위, 기업자유지수도 6위로 도약.
―2011년 7월 영국 여론조사에서 ‘지난 30년 간 가장 유능한 총리’로 선정.

―요즘은 신자유주의(민영화·작은 정부 등을 핵심으로 하는 정책)가 동네북이다. 대처가 시작한 것 아닌가.

"지금 대처의 신자유주의를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녀의 중요성은 1970년대 사회주의에 경도된 분위기에서 아무도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것을 제시하고 행동으로 옮겼다는 사실이다. 바로 '영국병'의 원인이던 강성 노조와 전투적 사회주의에 끝을 낸 것이다. 그게 끝났기 때문에 다음 단계로 온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과도함에 대한 반성은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역사의 주인공은 개인이지 국가가 아니라는 깨달음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게 대처의 공헌이다."

―퇴임 후 21년이 지났다. 역사가들의 평가는 어떤가.

"영국 경제의 체질을 바꿔놨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대처가 아니었으면 영국 경제는 중하위권으로 내려앉았을 것이다. 그중 제일 중요한 것이 노조 세력권을 무력화한 것이다. 1979년 영국 여론조사에서 나라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로 73%가 노조를 꼽았는데 1987년에는 1%였다."

―대처는 문제가 없었나.

"후반으로 가면서 정치적 판단에 실책이 있었다. 사람들의 피로감도 쌓였고. 대처는 자기 삶에 책임지지 않고 노력도 않는 사람에게는 하등의 연민이 없었다. 당시 지식인들의 반발도 심했다. 애덤 스미스의 나라인 영국에서도 시장경제라는 말을 대놓고 쓰기 주저할 정도로 사회주의 열풍이 거셌던 상황에서 반대 방향으로 몰아붙이니 그럴 수밖에. 하지만 옳은 방향이었다. 대처의 보수주의 혁명은 노동당마저 '미치광이 좌파'에서 중도좌파 정당으로 거듭나게 했다."

―영화 '철의 여인'은 봤나. 여기서는 대처가 배우 메릴 스트립에게 묻힌 것 같던데.

"대처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데는 실패했다. 중요한 사건의 맥락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가령 광부 파업 장면만 해도 충돌만 부각했지 의미를 전하지 못했다. 당시 파업은 사회 약자의 생존권 투쟁이라기보다 극좌 노조의 정치 파업이었다. 대처는 이 무소불위 힘을 꺾었고 그 뒤 전투적 노조가 수그러들었다. 포클랜드 전쟁도 전쟁 이상의 의미가 담긴 사건이었다. '유럽의 환자'라는 절망감에 빠진 국민에게 '우리는 더 이상 후퇴하는 나라가 아니다'는 단호한 태도를 보여 자신감을 불어넣은 것이다. 그래서 국민이 그렇게 환호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