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위해 뛴 건 6·25 참전한 아버지 때문"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 평창은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약점입니다. 관광객을 효율적으로 유치하기 위해선 올림픽 기간 차편을 늘린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교통편을 개선해야 합니다."

올림픽 전문 컨설턴트 회사를 운영하는 테렌스 번스(Burns)는 "평창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선 정치권에 휘둘리지 말고 전문가들 의견을 최대한 따라야 한다"고 조언했다.

평창동계올림픽준비위원회는 작년 7월 남아공 더반에서 '새로운 지평(New Horizons)'이라는 슬로건 아래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가슴을 울린 탁월한 프레젠테이션(PT)을 진행해 도전 세 번 만에 올림픽 유치권을 따냈다. 테렌스 번스는 이 PT를 총괄 지휘한 미국인 마에스트로다. 조선일보 아시안 리더십 콘퍼런스 참석차 최근 한국을 방문한 번스는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을 위한 조언과 유치 뒷이야기를 풀어놨다.

번스는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유치에 기여해 '미다스의 손'이라 불리던 인물이었다. 밴쿠버와 소치에 밀려 두 번이나 동계올림픽 유치에 실패한 평창으로선 번스가 '적장(敵將)'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2009년 조양호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장은 취임 직후 번스 영입작전에 들어갔다. '가장 강한 적을 우리 편으로 만들겠다'는 조 위원장의 역발상 제의를 번스는 선뜻 받아들였다.

번스를 움직인 가장 큰 요인은 6·25에 참전했던 그의 아버지라 했다. 테네시 출신 19세 시골 청년이었던 아버지에게 전쟁은 인생관을 바꿀 만큼 강렬한 경험이었다.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버지는 당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게 됐대요. 귀국 후에도 한국 소년과 오랫동안 펜팔을 했을 만큼 한국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임무를 맡은 번스는 평창이 두 차례 실패한 원인부터 냉정하게 분석했다. "PT의 핵심은 IOC 위원들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지와 평창이 '왜' 동계올림픽을 열어야 하는가예요. 2010년과 2014년 평창의 PT는 한반도 통일이 주제였습니다. 감성 호소엔 성공했을지 몰라도 '왜'라는 대목에선 설득력이 없었죠."

수십 차례 회의를 거쳐 평창 동계올림픽을 가장 잘 상징하고 IOC 위원들을 효과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연사를 선발했고, 그들이 가진 '스토리'를 토대로 연설 원고를 썼다. 연사들은 연습을 거듭하면서 번스가 제시한 초안에 아이디어를 덧입혀 나갔다.

"이명박 대통령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막 해외 순방을 마쳐서 기진맥진하고 목도 쉬어 있었어요. 하지만 더반까지 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눈을 붙이지 않고 계속 원고를 욀 정도로 열심이셨죠. 김연아 선수는 세계적 스타 같지 않게 겸손한 게 인상적이었어요."

개개인 특성에 따라 훈련 방식도 달랐다. 장황하게 말하기 일쑤인 정치인은 압축적으로 요약하는 훈련을 하게 했다. 이렇게 1년 반 동안 수없이 연습을 거듭하며 빚어낸 평창 PT를 번스는 "감정적 요소 70%와 기술적 요소 30%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드라마"라고 평가했다.

'새로운 지평'이라는 슬로건 역시 '끝없는 가능성(Endless Possibilities)' '꿈을 크게(Dream Big)' 등 후보 8~9개를 놓고 번스의 표현대로라면 '건전한 토의'를 거친 끝에 선정했다.

올림픽 컨설턴트가 되기 전 번스는 15년간 델타항공 관리직에 있었다. 델타항공이 애틀랜타 올림픽 스폰서를 맡은 것을 계기로 인생 진로를 바꿨다고 했다.